[CEO 칼럼] 원칙 지키면 바보인가?/안용찬 애경 사장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수정 2005-07-11 00:00
입력 2005-07-11 00:00
몇해 전 강남역 근처의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처음엔 강남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조용하고 쾌적한 환경에 가족들이 매우 만족해 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아파트 단지 소도로까지 침범해 버린 불법 주·정차들로 인해 조용함이나 쾌적함을 즐길 수 없게 됐다.

이미지 확대
안용찬 애경 사장
안용찬 애경 사장
물론 강남역 근처의 혼잡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불법 주·정차 지역 견인표지 바로 아래까지 버젓이 주차한 차를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한 번은 불법정차 중인 차주에게 “여기는 주·정차 금지구역으로 견인표지까지 있는데, 이렇게 정차하고 있으면 어떡합니까?”라고 잔소리를 해보았다. 그러나 그는 “말만 주·정차 금지구역이지 다들 여기 세워요. 단속도 안 하는 지역이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라고 답했다. 말문이 탁 막혀 버렸다.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자신의 행동이 안전한지 아닌지를 배운다. 불법 주·정차하는 사람들 역시 경험을 통해 단속이 허술하다는 것을 알고 습관처럼 불법주차를 하는 것이다. 약간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한다. 남들 다 안 지키는 법규를 나 혼자만 지키면 바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통법규와 같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본원칙을 쉽게 어기며 살고 있다. 나 혼자 편하기 위해, 아주 조금 빨리 가기 위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애써 무시하려 한다.

기업경영에 있어서도 원칙을 지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생활용품과 화장품을 생산하는 애경에는 많은 브랜드가 있다. 매년 새로 태어나는 브랜드가 있고, 태어난 지 불과 몇년 되지 않았는데도 쓸쓸히 사라지는 브랜드가 있다.

반면에 어떤 브랜드는 수십년을 한결같이 소비자에게 사랑 받으며 장수한다. 장수 브랜드로 꼽히는 제품들의 공통점은 기본적으로 품질이 우수하고 가격이 적당하다는 것이다.‘저렴하고 좋은 품질의 제품’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시장에서 사랑받고 장수하는 최고의 비결인 것이다.

얼마 전 한 경제연구소에서 발표한 ‘2015년 10대 선진국 진입전략’에서 한국 경제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양적으로는 11위, 기업경쟁력 국가이미지 브랜드 파워 등 질적으로는 19위에 그치고, 삶의 질은 26위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했다.

우리나라는 10년내 선진국 진입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 시스템 경쟁력을 시급히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시스템 경쟁력으로는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승산이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시스템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경제 발전기에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사회 분위기가 강했다. 그 결과 ‘빨리빨리’가 한국인의 대명사가 되었고, 교통법규 같은 사회 기본원칙이 쉽게 무시되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기본원칙이 준수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약속된 법칙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에게 불이익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질서 의식이 함양되기까지 기다리는 방법도 있지만 그 때까지 우리 사회 전체가 치러야 할 무질서의 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향후 10년간 통일비용에 대한 부담과 인구 고령화, 중국의 부상에 따른 국제적 입지 약화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문제는 많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원칙과 기본을 지키는 10년 후의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

안용찬 애경 사장
2005-07-11 2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닫기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