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물구경/김용택 시인·교사
수정 2005-07-07 00:00
입력 2005-07-07 00:00
어렸을 때 이렇게 비가 많이 오고 큰물이 나가면 강 건너 아이들은 작은 배를 타고 강물을 건넜다. 학교에 일찍 와서 강 건너 사람들이 작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동네마다 강을 건너는 뱃마당은 큰물이 흘러도 물살이 순해서 배가 잘 건널 수 있었다. 아이들과 지게 진 농부들과 소를 싣고 붉게 흐르는 큰 강물을 건너오는 배는 지금도 아름다운 그림처럼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어디 배뿐인가. 보리 타작을 하고 강가에 산더미같이 쌓아 놓은 보릿대가 둥둥 떠내려 오고, 그 보릿대 위에 커다란 구렁이는 물론 작은 뱀들이 엉켜있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밤에도 비가 내려 큰물이 나가면, 동네 사람들은 앞산 뒷산 산골짜기와 강물이 흐르는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큰물 속에 있는 바위 구르는 소리는 또 쿵쿵쿵거리며 우리들을 얼마나 불안하게 했던가. 산골짜기에서 물 흘러내리는 소리, 고샅을 흘러가는 물소리, 강물이 쿵쿵 흐르는 물소리, 빗소리는 금방이라도 강물이 우리 집 마당을 덮칠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따금씩 강가에 나가 물을 보고 오셨다.
강가에 가서 물을 보고 오신 아버님이 마루에 올라서면서 “아이고, 벼락바위가 넘을라면 아직 멀었구먼.” 하시며 우리들을 안심시키셨다. 강변에 있는 벼락바위는 우리동네에 강물의 양을 측량해 주는 바위였다. 그 바위가 넘으면 강물이 마을 앞길까지 넘실거렸던 것이다. 벼락바위가 넘고, 더 물이 불면 우리 동네 논과 밭의 침수를 알리는 신호였던 셈이다.
그렇게 큰비가 오고 큰물이 나간 아침이면 사람들은 날이 밝기가 바쁘게 하나둘 강가로 나왔다. 앞산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은 어느덧 맑은 물이 되어 하얗게 부서지며 콸콸 흘러내렸고, 뒷산에서 흘러내려 고샅을 흐르는 물들도 맑고 차가웠다. 논에는 맑은 물이 가득 고여 물꼬로 흘러내리고 논바닥에 엄지손가락보다 큰 누런 미꾸라지들이 구정물을 일으키며 돌아다녔다.
동네 앞길을 넘어 느티나무 밑까지 강변을 꽉 채우고 출렁이며 흘러가는 강물은 숨이 다 막힐 지경이었다. 아이들은 강물에 쫓겨 올라오는 메뚜기나 거미, 지렁이로 고기들을 낚고, 투망질을 잘 하는 어른들은 무서운 물살을 피해 투망을 던졌다. 낚시를 하든 투망질을 하든 고기는 많이도 잡혔다.
투망 가득 걸린 고기들을 빼 담으며 우리들은 얼마나 신이 났던가. 거미나 메뚜기를 매단 낚시에 피라미들이 참으로 잘 물었다. 낚싯바늘을 두 개 달면 고기가 한꺼번에 두 마리씩 물었다. 낚시에 두 마리가 물어 올라오면, 낚시를 같이 하던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댐의 수문을 열면 아기만한 잉어가 상처를 입고 둥둥 떠내려 오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은 하루종일 그렇게 물과 함께 신나게 놀았다.
나이가 들어 이것도 저것도 하지 못하는 할아버지들은 강변 물가 바위에 앉아 하루종일 물 구경을 했다. 발 앞에 와 부서지고 찰싹이는 물살과 저 산굽이를 돌아가는 물을 하루종일 바라보는 나이든 어른들의 하염없는 모습은 동네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이 일어나게 하는 장면이었으리라. 큰물이 나가고 하루만 지나면 금방 맑은 물이 강을 메우고 흘렀는데, 강물 속으로 풀꽃들이 안간힘을 쓰는 것이 보였다. 맑은 강물 위로 이따금 솥뚜껑(?)만한 자라가 둥둥 떠가기도 했다.
그렇게 며칠 큰물이 나가고 물이 쭉 빠지면 강변엔 어디서 굴러 왔는지 주먹만한 자갈들이 하얗게 깔려 우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어떤 때는 자갈들이 큰물을 따라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러고는 깨끗해진 강에 맑은 물이 오래오래 흘렀다. 큰물이 나간 후 물고기들은 또 얼마나 많아졌던가.
그러나 이제 큰물이 저렇게 나가고 나도 고기들은 돌아오지 않고, 강변에 온갖 쓰레기들만 산더미를 이룬다. 폐비닐들이 무성하게 자란 강변 버드나무 가지에 걸려 처절하게 나부낀다.
강물은 사람들의 생각과 사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투영된다. 큰물 나가고 강변에 쌓인 저 참담한 쓰레기더미가 바로 지금 나의 모습인 것이다.
김용택 시인·교사
2005-07-0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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