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서울대 입시, 그들만의 리그인가/최재식 서울 배화여고 교사
수정 2005-07-01 08:50
입력 2005-07-01 00:00
논술·문학·외국어 능력 우수자는 외국어고 학생들에게, 수학·과학·정보능력 우수자는 과학고 학생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이같은 특기자 전형의 비중을 30%로 늘리고 동일계 전형을 무시한다면 그만큼 일반고 학생들의 몫은 줄어든다. 이는 동일계 전형을 통해 특목고 학생들이 전공과 관련 없는 학과에 진학하는 것을 막겠다는 교육부의 방침을 무시하는 것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논술시험의 강화다. 내신 비중을 상대적으로 낮추고 수능을 자격고사화하면서 당락을 논술로 가리겠다는 전형 방식은 일부 계층들만의 ‘리그’인 셈이다.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은 특정 교과목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형태의 논술고사를 통해 수학 능력을 판단하겠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본고사의 부활과 다름이 없다.
현재 이른바 상위권 대학에서 실시하고 있는 논술고사만 하더라도 정상적인 학교교육만 받은 학생들이라면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출제된다. 솔직히 교사인 내가 봐도 매우 어렵다. 하물며 오랫동안 양질의 논술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지 않은 학생들이 영문혼합형 논술, 철학적 사유를 요구하는 논제, 논술과 과학의 통합교과적 문제 등에 제대로 답을 쓰기란 더더욱 어렵다.
사정이 이런데도 더욱 심화된 논술을 실시하겠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고가의 사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들을 배제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일부 유능한 학생들의 경우 논술학원을 다니지 않고 꾸준한 독서교육을 통해 서울대 논술시험을 감당할 수 있겠지만 과연 그 수가 얼마나 될 것인가. 기회의 평등이 주어져 있지만 과정의 평등이 확보되지 않은 ‘시합’은 본질적으로 공정하지 못하다. 어느 사회에서나 경쟁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나는 경쟁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경쟁 시스템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역균형선발제를 통해 국립대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자 한다면 특목고에 유리한 특기자 전형과 정시모집에서의 논술 비중 강화는 재고되어야 한다.
가뜩이나 일선 교육 현장에서 전인교육의 가치를 구현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이번 서울대 전형은 학생들에게 더 큰 경쟁심과 위화감을 심어주게 될 것이다. 이것은 비단 서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파급 효과가 연·고대 등 상위권 대학으로 이어져 일선 학교의 진학지도는 심각한 혼란에 빠졌다.
유명 대학 합격생 수로 학교를 평가하는 현실에서 서울대안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결국 교육의 본질적 기능과 역할을 무시하는 것이다. 과연 학교 교육의 몫은 공동체 의식은 상실한 채 능력만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인가. 이번 서울대안은 대학의 서열화와 학벌지상주의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고, 우리 사회 기득권층의 카르텔을 더욱 견고하게 할 것이다.
최재식 서울 배화여고 교사
2005-07-01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