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스미치온/심재억 문화부 차장
수정 2005-05-18 09:12
입력 2005-05-18 00:00
앵이 오빠가 홧김에 들이킨 농약은 스미치온이었다. 냄새만 맡아도 진저리가 쳐지는 맹독성 살충제였지만 물에 풀릴 때면 흰 결로 번지는 게 꼭 쌀 씻어내리는 뜨물 같았다. 농사철이면 그런 스미치온이 집집마다 널렸는데, 그게 그만 한 목숨 거둬간 것이다.
그 날, 하릴없이 마루에 누웠자니 선반 위 스미치온 병이 눈에 들어왔다. 저게 사람을 죽였다는 생각에 가만 살펴 보려는데 벽력같은 호통이 뒤통수를 때렸다. 아버지였다.“귀때기 피도 안 마른 눔이 애비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댄다.”는 것이었는데, 그 후 우리집 선반에서 다시는 그 스미치온 병을 보지 못했다.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2005-05-1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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