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그림자와 나무/문태준
수정 2005-04-09 00:00
입력 2005-04-09 00:00
문태준
갈참나무의 그림자들이 비탈로 쏟아지고 있다
저 검고 지루한 주름들은 나무 속에서 흘러나왔다
내 몸속에서 겨울 문틈에 흔들리던 호롱불이 흘러나오고, 깻잎처럼 몸을 포개고 울던 누이가 흘러나오고, 한켠이 캄캄하게 비어 있던 들마루가 흘러나오고…
오후 4시는 그래서 나에게 아주 슬픈 시간이다. 어새날 새 아침
삼백예순다섯 개의 꽃씨 한 주머니
깨끗한 두 손에 받았습니다
이제도 감히 꿈이란 말 할 수 있을까만
꽃씨 한 알 한 알 환히 눈뜨고 깨어나는
황홀한 시대의 아침을 위해
나는 이 겨울 흙이 되고 거름이 되기를 다짐합니다
우리 손에 쥐어 주신 참 단단한 호두알들
그것을 깨트는 일,
바로 우리의 몫으로 남겨 주셨으니
2005-04-09 2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