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초단체장 정당공천 폐지해야/권문용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장, 서울 강남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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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5-03-10 07:52
입력 2005-03-10 00:00
일부 국회의원이 최근 지역구의 자치단체장 공천과 관련,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후보 공천과정에 돈이 오갔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사실로 드러난다면 이는 매관매직에 해당한다. 작년에도 여러 지역에서 시장·군수 후보가 5억∼7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공천헌금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공천헌금과 같은 매관매직의 폐해는 구한말 유학자 황현이 매천야록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나라와 국민을 불행하게 한다.21세기에 또 다시 매천야록을 써야 하는가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온 국민은 깨끗한 정치를 원한다. 지방정치만이라도 깨끗해지려면 자치단체장에 대한 중앙당의 ‘정당공천제’를 하루빨리 없애야 한다.

일각에서는 정당의 책임정치를 위해 정당공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군·구는 지역현안이 저마다 다르다. 농수산물 판매가 주요 시책인 지역이 있는가 하면, 기업을 유치해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일이 우선적인 곳도 있다. 관광 활성화나 교통난 해소 등 전략이 다를 수밖에 없다. 결코 한 정당이 모두 책임질 수도 없고, 책임져서도 안 된다.234개 시·군·구 단체장에게 그 책임을 맡겨야 한다.

정당의 책임정치는 명분보다는 그 폐해가 더 크다. 지난번 서울에서 구청장 보궐선거가 있어 유세장에 가보았더니 양당의 중진들이 다 몰려 나왔다. 구청장 선거이니 당연히 주변하천을 맑게 한다든지 공원 조성이나 주차난 해소 등의 논의가 있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는 증발해 버리고 양당 중진은 지역의 현안과는 관련이 없는 햇볕정책의 옳고 그름만을 가지고 공방을 주고 받았다. 이 것은 정당의 책임정치와는 거리가 먼 지방정치의 중앙정치화다.

또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회의원 대신 당원이 직접 뽑는 경선제가 채택되지 않았느냐.”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선제처럼 그 허명만 높은 것도 없다. 지난번 경선에서도 큰 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많은 후보들의 하소연이다. 또 경선에서 정치인의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것이 후보들 대부분의 의견이었다. 그러니 경선제는 산속에서 살쾡이를 피하려다 늑대를 만나는 꼴이다. 경선제는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세계에서 인터넷을 가장 잘 활용하는 국민이다. 다시 말해 정보를 스스로 취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당연히 ‘누가 더 대표로서 적합한가.’하는 것은 이제 시민이 직접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공천헌금으로 왜곡될 수 있는 정당추천보다 시민들이 더 잘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 후보자는 자기 정당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 누가 제일 나은 사람인가를 선택하는 일은 반드시 시민에게 맡겨야 한다.

일본에서도 이런 이유 때문에 시장·군수·구청장의 98%가 무소속이다. 그리고 미국도 81%가 무소속이다. 며칠 전 정당공천제를 없애자는 안에 대해서 전국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500명의 의견을 조사했더니 찬성률이 무려 91%에 달했다.

중앙과 지방할 것 없이 정치분야를 깨끗이 하기 위해서는 시장·군수·구청장의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권문용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장, 서울 강남구청장
2005-03-1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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