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수도권 얼마나 더 망가져야 하나/한현규 경기개발연구원장
수정 2005-01-28 00:00
입력 2005-01-28 00:00
그런데,10년 전에 완성된 분당과 일산이 아직도 경기도에서는 가장 살기 좋은 도시다.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은 아파트 값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분당과 일산이 완성된 이후 10년. 그동안 경기도에는 150만채의 아파트가 더 건설되었다. 분당에 아파트가 많은 것 같아도 10만채에 불과하니,150만채라면 분당 15개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그런데 과연 15개의 분당은 어디 있을까? 불행하게도 용인, 남양주, 김포, 화성 등의 산자락 논자락에 마구잡이로 널려있다. 도로, 철도는 고사하고 학교 등 교육시설이나 변변한 직장, 문화적 환경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난개발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만일 시계바늘을 10년 전으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늘어나는 주택수요에 맞춰 어차피 10년 동안 경기도에 150만채의 아파트를 지을 계획이었다면, 분당과 일산 같은 도시,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좋은 도시 15개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도로망과 철도망을 완벽하게 갖추고 학교시설은 물론이고 상업용, 업무용 빌딩도 많이 지어서 일자리를 늘리며 호수공원이나 중앙공원과 같은 널찍한 시민들의 휴식처도 만들 수 있었는데…. 그렇게만 했더라면 경기도 1000만명 중 600만명이 지금 그런 도시에 살고 있을 텐데…. 매일 겪는 출퇴근 시간의 고통도 자녀 교육 걱정도 덜 수 있었는데…. 이미 경기도만이라도 선진국 못지않은 생활을 누릴 수 있었는데….
마구잡이로 파헤쳐진 남양주시의 경춘국도를 지나면서, 난개발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용인시를 거닐면서, 나름대로 이 분야에 몸담아왔던 나로서는 주민들 앞에 속죄하며 무릎 꿇고 빌어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두 가지 잘못된 생각이 있었다.
첫째로 수도권 과밀론자들의 생각이었다. 대규모 신도시를 만들면 지방에서 사람이 꾀어 들고 그렇게 되면 수도권이 더 복잡해질 것이라는 우려이다. 이들의 우려와 목소리가 너무 커서 분당, 일산 이후에는 대규모 신도시를 만들 수가 없었다. 집값은 올라가 주택은 지어야겠고, 대규모 신도시는 대규모 인구유입을 가져올 것 같고…. 그러니 준농림지를 이용한 소규모 민간개발이나 미니 신도시란 미명하에 소규모 공공개발을 수없이 반복해 온 것이다. 도로 하나 변변히 갖추지 못한 채….
둘째로 대규모 개발은 대규모 환경파괴라고 생각하는 환경론자들의 역할도 컸다. 환경보호라는 명분을 앞세워 개발을 터부시하고 특히 국가가 시행하는 대규모 개발에는 목 내놓고 저항하는 환경론자들을 피하자니,10만평,20만평 규모로 잘게 썰어서 경기도내 수백 군데에 걸쳐 난개발을 추진했던 것이다.
앞으로 20년 후 과연 수도권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지난 10년간의 전철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수도권 전체의 미래 모습을 지금 이 순간 그려놓고 있어야 한다. 도로와 철도망은 어떻게 짜고 도시는 어디를 어떻게 개발하고 그 안에 학교와 직장은 어떻게 만들고 주민들의 휴식처와 문화공간은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지난 2년동안 경기도는 각계 전문가들의 공동작업으로 수도권의 계획적 관리계획이라는 20년후 청사진을 만들었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그렇게 되면 수도권만 너무 좋아진다는 이유 때문이다.
수도권 과밀과 지방과의 격차해소를 위해 행정수도 이전이나 공공기관 이전을 밀어붙이는 정부여당이 다시 한번 수도권 과밀론자와 환경론자들에 둘러싸여 수도권 난개발의 본질적인 문제를 애써 외면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10년 후에도 이런 후회를 다시 반복하면 안 되는데….
한현규 경기개발연구원장
2005-01-28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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