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개혁과 포용/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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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5-01-13 07:26
입력 2005-01-13 00:00
요즘, 인사(人事)만 했다 하면 말들이 많다.“대학 개혁을 위한 적임자”라는 명분으로 이기준 전 서울대 총장을 부총리로 임명하자 도덕성 문제로 온 나라 안이 시끌벅적하더니 이제 한나라당 당직 개편을 두고도 말이 많다. 이번 당직 개편을 두고 일부에서는 박대표의 ‘사당화(私黨化)’를 위한 개편이라고 혹평하거나 혹은 ‘보수화’의 징표라고 걱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당권을 가진 이들은 이번 개편을 두고 “정책 정당으로의 변모”를 위한 인사라고 한다.

우리나라 인사의 특징 중의 하나는 인사권자의 명분과, 인사를 두고 해석하는 이들 사이의 인식의 격차가 크다는 점이다. 그리고 명분과 반대 논리 모두 거의 비슷한 단어들을 사용한다는 점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이때 사용되는 용어들이란 ‘보수’,‘개혁’ ‘실용주의’를 들 수 있다. 이러한 말들, 즉 인사를 하는 측의 명분과 이를 비판하는 이들의 주장 속에 나타난 단어들 때문에 국민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본래 보수, 그리고 그 반대의 개념으로 쓰이고 있는 진보라는 개념은 항상 상대적 개념이다. 즉, 특정 사회에서의 ‘보수’라는 것은 정치적, 혹은 경제적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행위 혹은 ‘생각’을 의미하고, 반면 ‘진보’라는 개념은 이러한 권력유지 행위 혹은 ‘생각’에 저항하는 일체의 행위 혹은 ‘생각’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과거 동구 사회주의권이 존재할 때, 보수는 ‘현존 사회주의적’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들이었고 반면 진보는 ‘현존 사회주의적’ 기득권을 타파하기 위한 반대의 경제 이데올로기, 즉 시장경제를 주장하던 이들이었다. 결국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은 체제에 관한 개념이라기보다는 어떤 체제이든 그 체제 내에서의 기득권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개념이 항상 이념과 결부된 ‘절대적’ 개념으로 사용되어진다는 느낌이다. 즉, 우경화는 곧 보수이고, 좌경화는 곧 진보라는 등식이 최소한 한국에서는 성립한다는 말이다.

이런 잘못된 용어 사용은 ‘개혁’이라는 단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개혁’이라는 단어는 마치 ‘보수’와는 정반대의 뜻을 가진 단어처럼 사용된다. 하지만, 개혁과 보수는 정반대에 위치한 단어가 아니라, 오히려 ‘보수’에 의해서 행해질 수 있는 정치 경제적 변화의 시도가 바로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개혁이란 기득권의 유지를 위해 행해지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로부터의 개혁은 존재하지만, 밑으로부터의 개혁은 역사상 찾아보기 힘들다. 밑으로부터, 즉 기득권을 가지지 못한 이들이 추구하는 변화는 기득권층의 인적 구조와 거기에서 파생되는 정치, 경제적 질서의 변화인데,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개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개혁을 통해서는 기득권 계층의 인적 변화가 일어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보수, 즉,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이들이 행하는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의 추구라는 것이다.

결국 기득권이 분점되어 있는 사회, 이른바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각자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보수화될 수밖에 없고, 때로는 기득권 유지를 위해 자신의 권력을 조금이라도 분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개혁을 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개혁은 선(善)이고 보수는 악(惡)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빠져 있다. 우리 사회가 다원주의 사회로 진입하는 상태라고 가정할 때, 어차피 기득권은 분점되어 있는데, 상대의 기득권은 악이고 나의 기득권은 기득권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즉, 자신이 기득권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상대의 기득권도 인정하는 법인데, 우리의 정치에서는 아직도 이런 측면을 발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필요한 것은 개혁이냐 보수냐라는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대립구도보다는 얼마나 상대를 포용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포용과 이해는 자신에 관한 객관적 인식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지금 여야 모두 상기할 때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 교수
2005-01-1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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