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나이롱 양말/심재억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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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5-01-07 00:00
입력 2005-01-07 00:00
‘나이롱양말’의 변덕에 울고 웃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대쪽을 켜서 만든 수제 스키를 꺼내들고 개울가 얼음지치기에 나섰다가 얼음장이 푹 꺼지면 아랫도리가 통째로 물에 젖곤 했는데, 이게 문제였습니다. 아무리 천둥벌거숭이지만 한겨울에 발이 몽땅 젖었으니 그 살이 얼마나 아렸겠습니까.

짓까불다 못견딜 만하면 검불을 모아 지핀 불가에 서캐처럼 들러붙어 양말을 말리곤 했는데,‘나이롱’이라는 게 참 허망해 휙, 불꽃만 스쳐도 오그라들고 눌어붙어 숭숭 구멍이 뚫리곤 했거든요. 시쳇말로 ‘씻고 벗고’ 양말은 그거 한 켤레뿐인데 그걸 ‘절딴’내 놨으니 눈앞이 캄캄할 수밖에요. 햇볕에 녹아 얼음판이 질척거릴 무렵, 코를 빼물고 들어서면 어머니는 낌새로 사달을 짐작하십니다.“뜨신 방에서 주는 밥이나 챙겨 먹지, 무슨 용오르는 일이 있다고 그런 델 가.” 꾸지람에 오금이 저리지만 그게 면죄부가 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 날은 종일 방안에서 뭉기적거립니다. 오리새끼도 아니고 한겨울에 맨발이 가당키나 합니까. 저물 녘, 어머니는 광목천을 덧대 기운 양말을 건네십니다.“또 불 옆에 갔단 봐라.”는 엄포를 따뜻한 눈총에 얹어.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2005-01-07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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