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도시는 재미있어야 한다/임태순 지방자치뉴스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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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12-24 07:28
입력 2004-12-24 00:00
사람들에게 도시의 이미지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화려한 야경, 하늘 높이 치솟은 빌딩 등은 번영과 발전을 상징하지만 이면에는 매연, 교통난 등 부정적인 측면이 뒤따른다.

또 꽉 찬 일상생활 속에서 도시인들은 여유를 찾기가 어려우며 공동체 의식 등 인간적 유대감을 느끼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도시인의 삶을 두고 소외, 단절, 인간성 상실이란 말도 나온다.

특히 우리는 서구처럼 축제문화나 특별한 이벤트도 없는데다 그런 문화에도 익숙지 않아 별달리 사는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날로 메말라가는 현실 속에서 도시민들이 뒷골목을 찾는 것은 인간적 향취를 느끼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전 기업체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 스케이트장을 설치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다분히 비판적인 의견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면서 던진 질문이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예상과 달리 색안경을 끼고 볼 일이 아니라며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오래 전 미국 뉴욕에 들렀는데 시내 한복판 스케이트장에서 시민들이 스케이트를 지치는 것을 보고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부모들이 자녀를 스케이트장에서 놀게 하고 시청이나 백화점에 들러 일을 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회상했다.

며칠 뒤 서울시 공무원을 만난 자리에서 다시 같은 질문을 던져봤다. 스케이트장 규모가 너무 작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기에 불편해 시민들이 발품을 들여서 오겠느냐는 회의적인 반응과 전시행정, 탁상행정 같은 느낌이 든다는 의견도 곁들였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일부러 시청까지 나와서 줄을 서서 스케이트를 타지 않겠느냐며 서울광장의 분수대를 사례로 들었다.

듣고 보니 한여름은 물론 이미 더위가 물러간 10월까지 학생 또는 직장인들이 분수대 사이를 뛰어다니며 까르르 웃던 모습이 떠올라 그의 말에 수긍이 갔다.

그러면서 그는 도시는 재미있어야 한다고 했다. 녹음이 우거진 숲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도심 여기저기에서 퍼레이드, 가장행렬이 열려 시민들이 잔잔한 즐거움, 기쁨을 맛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가 지난봄 서울시내 일부 공원에서 바비큐를 허용하려던 방안이 무산된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당시 서울시는 공원에 바비큐 시설을 설치하고 주민들로부터 신청을 받아 제한적으로 고기를 구워먹는 것을 추진하려다 환경단체 등 환경보호론자들의 반발에 밀려 철회하고 말았다.

환경론자들의 우려에 공감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원리원칙에만 집착한 나머지 시민들 편에선 잔잔한 재미를 하나 잃어버린 것 같다.

북유럽은 도시설계의 지향점이 인간중심이라고 한다. 자동차 배척 운동이 일어나고 그 여파로 차도가 4차선에서 2차선으로 줄어들 정도라고 한다. 공원이고 산이고 도로고 모두 다 사람을 위해 있어야 한다. 그저 바라보는 대상이거나 사람이 뒷전이면 의미가 없다.

최근 우리 사회도 차없는 거리가 조성되고 쌈지공원이 들어서는 등 조금씩 변화가 일고 있지만 시민들의 휴식공간은 여전히 크게 부족하다.

서울광장과 동네공원, 스케이트장 등 모두 다 우리가 주인이다. 시민들을 위한 시설에 예산낭비 또는 전시행정이 아니냐며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임태순 지방자치뉴스 부장 stslim@seoul.co.kr
2004-12-24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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