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두대 고구마/심재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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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12-11 11:05
입력 2004-12-11 00:00
겨울 한철, 고구마는 소중한 양식이었습니다. 그걸 두고두고 먹으려면 얼지 않게 갈무릴 해야 했는데, 그 때 부엌방이나 작은방에 수숫대나 댓가지로 엮어 만드는 임시 고구마 저장고를 ‘두대’라고 불렀습니다.‘두대’를 모르면 시골에서 난 소싯적의 겨울을 추억으로 그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윽고 겨울이 깊어 함박눈이 사위의 길을 막아 적막한 날, 뜨듯한 구들에 등짝을 지지고 누웠노라면 ‘두대’를 가득 채운 고구마, 보기만 해도 뱃구레가 든든합니다. 도회 사람들이야 구워먹고, 삶아먹는 것밖에 모르지만 농투성이 아들로 살다 보면 나름대로 물리가 트여 요령도 생깁니다. 마당 곳곳에 치우다 만 눈더미가 진을 친 날,‘두대’에서 주먹고구마 서너알 꺼내다 눈더미 속에 몰래 묻어둡니다. 한 나절쯤 얼렸다 한밤 중, 출출할 때 꺼내 주머니칼로 삐져 먹는 맛을 속만 끓이는 아이스크림에 견주겠습니까.

눈이 내리지 않아 맹숭맹숭한 겨울 저녁, 고구마나 깎아 먹자고 주전부리 제안을 했다가 아빠나 먹으라는 면박에 그만 머쓱해집니다. 없어서 못 먹었던 고구마, 요즘 애들은 거저 줘도 안 먹습니다. 그래서 그 겨울의 ‘두대고구마’가 더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2004-12-1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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