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바리캉 분쟁/우득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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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12-07 08:01
입력 2004-12-07 00:00
보건복지부가 관할하는 공중위생관리법을 보면 ‘재미있는’ 조항이 많다. 법 4조 3항과 4항은 이용사와 미용사는 1회용 면도기를 손님 1인에 한해 사용토록 규정하고 있다. 위반하면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법 22조)가 부과된다. 대부분의 이용사와 미용사는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법 8조는 이용 및 미용업무를 영업소 외의 장소에서 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다만 질병이나 혼례(시행규칙 13조) 등 불가피한 경우에만 예외로 하고 있다. 처벌 규정은 1회용 면도기 사용 위반과 같다. 불우이웃시설을 찾아다니면서 선행을 펼치는 이용사나 미용사는 모두 법 위반이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이용사단체와 미용사단체간의 ‘바리캉 논쟁’도 현실과 맞지 않는 공중위생관리법이 낳은 코미디이다. 미용사들이 전동식 바리캉(헤어클리퍼)을 사용하는 것이 적법한지에 대한 질의에 복지부는 ‘이용업은 머리를 깎거나 다듬는 행위인 반면 미용업은 머리 등을 손질하는 행위’라는 법 2조에 의거해 ‘불법’ 판정을 했다는 것이다. 깎거나 다듬는데는 전동식 바리캉을 사용해도 되지만 다듬는 데는 가위만 사용하라는 해석이다. 공중위생관리법이 대표적인 ‘고무줄 법’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중위생관리법과 관련된 일화 하나. 장관을 지낸 A씨의 무용담이다. 공무원교육원에서 연수받던 시절, 주말에 연수 동기생인 각 부처 국장들과 골프장을 찾았다. 골프장 프런트에서 이름을 기재하는데 어떤 국장들은 회원란에, 어떤 국장들은 비회원란에 이름을 적는 것이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내무부, 재무부 등 ‘끗발있는’ 부처 국장들은 회원대우,‘별볼일 없는’ 부처 국장들은 비회원대우임을 간파할 수 있었다.

그때 체신부 국장이 당당하게 회원란에 기재하는 것을 보고 “보사부보다 끗발이 없는 체신부가 어떻게 회원대우를 받느냐.”라고 캐물었다. 이에 체신부 국장은 청색전화, 백색전화 시절 부킹(예약)용으로 청색전화를 가설해주는 조건으로 회원대우로 격상됐다는 비화를 털어놓았다. 순식간에 머리를 회전시킨 A씨는 골프장 사장을 불러 클럽하우스의 식당과 목욕탕이 공중위생관리법상 관리대상임을 내비치자 즉각 회원대우로 격상됐다고 한다.

관존민비(官尊民卑) 의식을 불식하려면 법부터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2004-12-0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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