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북핵 대책 총체적 재점검을/김영호 성신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수정 2004-10-02 10:51
입력 2004-10-02 00:00
미국 상원은 바로 다음 날 북한인권법안을 전격적으로 통과시켰다.이 법안은 중국 등지의 탈북자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민간 단체들을 후원하고,한국 국적을 취득한 탈북자들의 미국 난민 및 망명 신청을 제한하지 않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앞서 동구 공산권의 붕괴는 주민들의 대량 탈출에 의해 촉발됐다.이 법안은 미국 의회가 핵 벼랑끝 외교를 펴는 북한을 더 이상 두고 보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존 볼턴 미 국무부 군축안보담당 차관은 북한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 6자회담이 실패하면 북핵 문제를 유엔안보리에 회부하는 길밖에 없다고 주장했다.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목표로 한 베이징 6자회담 개최는 미국 대선 이전에는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북·미 관계도 더욱 경색될 전망이다.
북핵 문제 해결이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북한은 더 많은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게 되리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미국 정보당국은 북한이 2개가 아니라 최소한 8개 정도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조만간 북한 핵 시설에 대한 동결과 사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북한은 단순히 핵 억지력이 아니라 주변 국가에 대한 핵 공격력을 갖추게 됨으로써 동북아지역 국가들로 하여금 핵 보유를 부추기는 핵 도미노 현상을 불러올 것이다.미국 대선 전에 6자회담이 열리지 않을 경우 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앞으로 회담 개최에는 최소한 6개월이 걸릴 것이므로 북한은 더욱 많은 숫자의 핵 무기를 보유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원자력연구소가 행한 과거 우라늄 분리실험과 플루토늄 추출과 관련된 국제 사회의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최근 ‘핵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4원칙’을 발표하고 핵무기의 개발 및 보유 의사가 없음을 천명했다.그러나 북한이 다량의 핵무기를 보유한 사실이 확인되고 핵 실험마저 감행할 경우에도 정부가 ‘핵 4원칙’에 대한 국내 정치적 지지 기반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북한의 핵 보유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도 핵 보유로 가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미국이 추진하는 미사일방어체제(MD)에 참여하고 미국의 핵 우산을 강화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는 것인지 정부는 구체적인 대응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베이징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노력해 왔다.그러나 최근 일련의 사태는 북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대책도 철저히 마련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미국은 6자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유엔 안보리를 통한 대북한 제재 조치를 취하려고 할 것이다.우리 정부는 무조건 외교적 해결을 지향한다는 점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서 북핵 문제의 안보리 이관에 동의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뚜렷한 입장을 제시해야 한다.
지난 8월 노무현 대통령은 분권형 국정운영을 위해 정동영 통일부장관에게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을 겸직케 하고 통일,외교,안보 분야를 전담케 했다.그러나 정동영체제는 북핵 문제와 관련,제대로 된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돌발 상황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우왕좌왕하고 있다.정부는 기존 북한 핵정책의 이론적 전제에 문제는 없는지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때가 됐다.특히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북핵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공조체제를 재점검하고 구체적인 대응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김영호 성신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2004-10-0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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