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아버지/심재억 문화부 차장
수정 2004-09-24 07:39
입력 2004-09-24 00:00
그 해,추운 정월에 끝자는 서울로 갔다.동무 편에 ‘서울 가서 양장 기술 배워오겠다.’는 전언을 남기고는 보퉁이 하나 챙겨 밤열차를 탔다.늦둥이 딸 애지중지 키워 고작 열여섯에 의지가지없는 대처로 보낸 그의 맘이 오죽했을까.지난봄,‘아버지전상서’로 시작되는 편지를 받아 쥐고는 눈자위에 꼬질꼬질 눈물을 비치기도 했다.
땅거미가 제법 늘어질 무렵,청주병을 비끌어 맨 보퉁이에 능금바구니와 가방을 챙겨 든 끝자가 버스에서 내렸다.밭두렁에 바라기를 하고 앉았던 끝자아버지는 화들짝 일어서고도 우두망찰 서있기만 했다.끝자가 먼저 알아보고 불렀지만 대답도 못했다.목이 잠기고 눈물이 삐져나와 자꾸 콧잔등만 훔쳤지만 그해 추석은 포근했다.옛적,아버지들은 이렇게 자식을 가슴 속에 담아 키웠다.오로지 끝 모를 사랑으로.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2004-09-24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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