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벌초/오풍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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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09-09 08:29
입력 2004-09-09 00:00
할아버지는 추석이 다가오면 낫을 열심히 갈아 헛간에 보관한다.2∼3일에 한 번 꼴로 꺼내 날을 세우고 광을 내곤 했다.도시로 떠난 자손들과 함께 모여 조상 묘를 벌초하기 위해서다.날짜도 아예 못을 박았다.추석 2주 전 일요일이 그날이다.또 하나의 불문율도 만들었다.4촌 이내의 남자들은 전원 참석해야 한다.불참은 용납되지 않았다.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0여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대로 하고 있다.

예전에는 산소가 여기 저기 흩어져 있어 하루에 마치려면 빡빡했다.그래서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끝낼 수 있었다.해질 무렵 하산하면서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저수지에 풍덩 던지곤 했다.그 때의 상쾌함이란….그러나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낫 대신 제초기를 사용하다보니 벌초하는 데 2시간이면 넉넉하다.제수(祭需) 이외에 음식도 따로 준비하지 않는다.점심·저녁은 대부분 면 소재지나 읍내의 식당에서 해결하기 때문이다.



벌초 대행서비스가 갈수록 인기라고 한다.바쁜 세상에 더욱 성업을 이루지 않겠는가.물질만능보다 소중한 전통을 물려준 할아버지가 그리워진다.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2004-09-0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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