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내 탓이오’/오승호 논설위원
수정 2004-07-24 00:00
입력 2004-07-24 00:00
반면 7월로 접어든 이후 상황은 딴판으로 바뀌고 있다.시장에 불확실성을 심어주는 것은 물론,자신감 결여로 국민들이 기댈 곳을 없게 하는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이 부총리가 얼마전 우리 경제를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에 빠진 환자에 비유한 것은 위기가 아니라 조금만 기다리면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종전의 입장과 상충되는 것이다.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386세대에 대한 문제 제기도 했다.아울러 당정협의에서 이미 합의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의 문제점 등을 강하게 비난하는 등 불편한 심기도 거침없이 드러냈다.
그런가 하면 박 총재는 지난 20일 한 심포지엄에서 “우리 경제가 일본식 장기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고 했다.간접 화법을 동원하긴 했지만 경제 진단이 바뀌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이 부총리와 박 총재 얘기를 꺼낸 것은 경기 예측이 빗나간 것을 꼬집으려는 것은 아니다.예측 오류는 우리나라처럼 대외 여건에 취약한 경제 환경에서 있을 수 있는 현상이다.중요한 점은 경제 수장과 한은 총재가 우리 경제가 정말 어려운 국면에 놓여 있거나 경제 정책의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더이상 소모적인 위기론 논쟁이나 일본식 장기불황 가능성 등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할 때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현재 경제 정책을 둘러싼 환경은 서로 남의 탓만 쏟아내는 분위기가 형성돼 우려스럽다.한은의 한 국장급 간부는 최근의 경제 환경에 대한 정책 당국자들이나 기업인 등의 발언을 ‘신뢰 위기’(confidence crisis)라고 진단했다.자기가 하는 것은 옳고 상대방이 하는 것은 틀린다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로 각자 자기 목소리만 내면서 경제 불확실성만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이 부총리가 386세대를 비판한 것을 여당의 일부 의원들이 책임 회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걱정스럽다.
이 부총리도 오해를 살 만한 발언을 했기 때문에 386세대 의원들과의 토론의 장이 마련되면 상황을 잘 설명해 갈등을 해소해야 할 책임이 있다.이른바 ‘네 탓’ 논쟁으로 번지는 것은 안 된다.지금 상황에서 경제 기조가 흔들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같은 맥락에서 기업인들이 틈만 나면 규제 때문에 투자를 하지 못하겠다는 등 정부나 정치권 탓만 하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국가존망 필부유책(國家存亡 匹夫有責)’이라고 했다.경기가 어려운 것이 내 탓은 아닌지,겸허한 자세로 되돌아가 각자 제 역할을 해야 할 때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2004-07-2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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