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시대착오 主敵개념/오풍연 논설위원
수정 2004-07-17 00:00
입력 2004-07-17 00:00
북한이 주적개념의 폐지를 요구하는 것도 이해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는 그 강도가 세지고 있다.남북간 화해·협력을 내세우면서 한쪽을 적(敵)으로 간주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다시 말해 주적론과 평화번영정책은 양립(兩立)할 수 없다는 얘기다.북한 ‘통일신보’가 지난 5월 “동족과의 대결을 조장하는 것”이라며 국방백서의 발간 중지를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주적은 상대적 개념이다.한쪽이 적으로 생각하면,다른 쪽도 마찬가지로 나와야 한다.따라서 북한도 남한을 주적으로 삼을 법하다.그러나 북한은 남한을 자신들의 주적이라고 밝힌 적이 없다.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철천지 원수’‘백년숙적(百年宿敵)’이니 하면서 증오심과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북한의 주적은 미·일이 되는 셈이다.
주적개념도 시대상을 반영하는 게 옳다고 본다.6·15 공동선언은 한반도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역사점 전환점이었다.그동안 남북 당국간 회담이 100여 차례 이상 열렸고,인적·물적 교류도 크게 늘어났다.철도·도로 연결사업,금강산 관광,이산가족 상봉,개성공단 개발 등이 예정대로 추진되고 있다.최근엔 남북 장성급 회담을 열고 서해상에서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군사분계선에서의 선전방송은 완전히 중단됐고,선전물 철거작업도 진행 중이다.과거 50년 동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남북간 경제력도 비교해 보자.한국은행의 추정치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 경제규모는 21조 9466억원(원화기준)으로 남한의 33분의 1(3.0%) 수준에 그쳤다.또 1인당 연간 국민소득(GNI)은 818달러(97만 4000원)로 남한 1만 2646달러(1507만원)의 15분의 1(6.5%) 정도였다.북한의 대외무역 규모 또한 23억 9000만달러로 남한의 156분의 1(0.6%)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주적개념을 끝까지 고수해야 할까.이제는 버려야 한다.문제는 국민 정서 및 북한의 태도다.국민들도 북한의 위협을 느끼고 있지 않은 듯하다.주적개념이 있어야 안보태세가 확고해지고,없으면 방어가 허술해지는가.그렇지 않다.이런 문제를 트집잡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고 난센스다.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주적개념 문제 등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대책은 남북간 군사적 신뢰구축이다.경제·사회 분야의 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해서도 군사적 신뢰구축과 긴장완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주적개념을 변경하기 위해 심사숙고 중인 국방부가 내건 전제조건이다.북한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2004-07-1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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