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문명의 충돌과 공존/도중만 목원대 역사학 교수
수정 2004-07-13 00:00
입력 2004-07-13 00:00
현실과 역사는 손등과 손바닥의 관계처럼 밀접하다.역사는 현실문제의 해결방향을 제시하고,현실 또한 그 역사의 의미를 새로이 되새겨 보게 해주기 때문이다.중국사에는 농경문화권의 한족과 유목문화권의 이민족이 만리장성을 사이에 두고 충돌에서 공존으로 나아갔던 장면이 선명히 남아있다.이 역사적인 장면은 우리의 눈앞에 진행중인 이라크 사태의 해결방안을 근본부터 다시 재고하도록 이끌어 준다.
만리장성은 한족과 유목민족 사이의 ‘피에 젖은 경계선’이었다.그것은 또한 농경문화와 유목문화를 가르는 문명권의 철벽과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상고시대부터 유목민족은 농경민인 한족을 끊임없이 침범하고 약탈하였다.한족에게 유목민족은 공포 그 자체였다.그것은 무소불위의 진시황제에게도 마찬가지였다.그가 만리장성을 축조한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이어서 한 무제도 유목민족을 악의 근원으로 판단했다.그는 전 국력을 기울여 유목민족을 공격했다.그러나 시황제의 만리장성도 무제의 수 차례의 파병도 모두 실패하고 만다.이것은 유목민족과 그 문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선택의 결과였다.이해 없이 공존의 길은 결코 모색될 수 없었다.아니 도리어 양측의 무고한 젊은이들만이 무수히 희생되고 말았다.지금도 만리장성은 수많은 백성의 한(恨)으로 쌓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존의 길은 강자가 약자의 처지를 깊이 이해하고 만리장성의 문을 여는 순간 다가왔다.유목민이 한족을 침범하고 약탈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피치 못할 이유가 있었다.그들은 근본적으로 자급자족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농경민인 한족에게 침범과 약탈이었던 것이 유목민에게는 유일한 생존의 방법이었던 셈이다.한족이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자 문제해결은 비교적 간단했다.
한족이 유목민에게 자급자족의 부족 분을 제공하면 평화공존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만리장성을 열고 국제무역장을 개설하면 그만이었다.그 결과 관시(關市) 제도가 생겨나게 되었다.이렇듯이 문명권 사이에 평화공존의 길은 강자가 약자를 이해하는 토대 위에 열릴 수 있었던 것이다.
고 김선일씨의 피살은 우리에게 경악과 분노를 가져왔다.파병 반대를 외쳤던 많은 이가 찬성론자로 돌아섰다.정부도 ‘테러 단호 대처’란 기본 방침을 결정하였다.미국의 강경론자들을 따라 이슬람문명권과 우리 사이에 진시황제처럼 만리장성을 쌓겠다는 것이다.한무제처럼 군대를 파병해 악의 근원을 제거하겠다는 얘기다.여기에 공존은 있을 수 없다.오직 충돌의 법칙만이 더욱 난무하게 될 뿐이다.충돌의 법칙이 난무하는 세상에서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길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린다.우리의 통찰력도 발휘될 수 없다.그 결과가 다시 더 큰 재난을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제 우리는 경악과 분노의 와중에서도 통찰력을 되찾아야 한다.이성을 회복해야 한다.하루빨리 충돌의 법칙을 파기하고 공존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강자인 미국의 강경책에 휘말려 들어가서는 안 된다.이슬람문명권의 입장에서 약자인 그들의 처지를 근본적으로 이해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공존의 원칙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이것이 끝까지 “살고싶다.”고 울부짖던 고 김선일씨의 희생과 지나간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숭고한 메시지가 아닐까.
그렇다면 바로 지금 우리는 그 메시지에 따라 충돌에서 공존으로 나아가야만 될 중요한 길목에 서있는 셈이다.
도중만 목원대 역사학 교수 ˝
2004-07-13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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