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아랍정책·외교라인 대폭 손질해야/이종화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교수
수정 2004-06-30 00:00
입력 2004-06-30 00:00
외교부내에는 이번 사건과 같은 복잡하고 예민한 문제를 능숙하게 처리할 아랍전문 외교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현재 아랍지역 22개국 가운데 14개국에 대사관이 상주하고 있지만 아랍전문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아랍주재 현직 대사 1명을 비롯해 본부대사 1명,본부 심의관 1명,해외 심의관급 1명,서기·사무관급의 실무자 3명 정도가 아랍어를 구사하며 아랍 전문외교를 펼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을 뿐이다.
이번 사건이 일어난 이라크 대사관에는 놀랍게도 이라크전문 외교관이 한 명도 없었다.아랍어 회화가 가능한 1명의 외교관은 본부 발령 상태였지만 워낙 상황이 긴박하게 전개되자 이라크에 머물며 정부 파견 협상단의 통역을 맡았다.그러나 그마저도 언어를 구사할 수는 있었으나 요르단 전문가이기 때문에 이라크에서는 아무런 인맥도 없어 이라크 무장세력들과 협상테이블을 꾸리는 데 실패했고,모든 협상 테이블을 민간인들에게 의지한 채 그 결과만을 초조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외교부는 이라크 파병발표 이전에 사전정지 작업에도 실패했다.외교부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 개선을 위해 키르쿠크와 아르빌 등 파병 예정지역의 정치인들을 초청,정부측의 입장을 설명했지만 막상 이번 사건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이들은 이라크내에서 친미주의자들로 분류되고 있어 무장 세력들에게 어떠한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했다.일본이 이라크를 실제적으로 움직이는 종교 지도자나 부족장들을 초청해 고이즈미 총리가 직접 영접하는 등 최대한의 예우를 갖춰 왔기 때문에 일본 인질들이 무사히 풀려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22개국 약 3억명에 이르는 아랍인들과 56개국 13억 인구의 무슬림들에 대한 우리의 대응자세가 너무나 안이했음이 이번 사태로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실제로 외무고시 시험에 아랍어를 채택하지 않아 이라크 전문 외교관을 한 명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 외교의 현실이다.이제라도 아랍정책과 아랍외교라인을 대폭 손질해야 한다.단기적으로는 이라크 파병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고,장기적으로 아랍·이슬람권에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아랍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그것만이 제2의 김선일씨 사건을 막는 길이다.
이종화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교수 ˝
2004-06-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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