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거머리 연가/문화부 심재억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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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06-19 00:00
입력 2004-06-19 00:00
징그러운 거머리 그 놈,이맘때가 제철입니다.무논에 개구리 왈왈대는 늦봄 무렵.논배미에 늘어선 모내기 일꾼들,거머리 덕에 숨을 돌립니다.장딴지며 발등에 미끈덕 달라붙어 낄낄대며 흡혈에 정신 빼앗긴 거머릴 떼어내느라 허리를 편 일꾼들,“거머리 힘좋게 엉겨붙는 걸 보니 풍년”이라며 넉살좋게 웃습니다.도회 사람들이야 질겁하겠지만 농투산이에게 거머리는 또 다른 동무입니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농약을 퍼붓지 않았습니다.다 내 먹을거린데 소출 좀 늘리자고 독한 농약 뿌려 좋을 일 뭐가 있겠느냐고들 여겼지요.그때는 미꾸라지며 개구리,물방개와 거머리가 논바닥의 주인이었습니다.그런 세상이었는데 요새는 숫제 농약을 퍼부어 때깔좋은 쌀만 만들어냅니다.그 바람에 독한 사람을 이르던 ‘거머리같은 놈’의 그 거머리는 눈을 씻고 봐도 없고요.



그 시절,거머리에 뜯긴 아낙들 호들갑을 떨라치면 나이 든 노인들 이런 핀잔을 던지곤 했습니다.“놀랠 것 어.알고 보믄 사람도 죄 그런 미물과 같이 사는 거여.” 그 징그러운 거머리가 천연덕스럽게 장딴지에 들러붙는 그런 넉넉한 세상이 다시 올까 모르겠습니다.

문화부 심재억차장 jeshim@seoul.co.kr˝
2004-06-1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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