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새 집시법 불복종 안된다/이상안 경찰대 교수·명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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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03-17 00:00
입력 2004-03-17 00:00
새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대해 시민·노동·사회단체가 불복종운동을 선언했다.시민단체 등은 불복종의 논거로 새 집시법이 ‘심각한 위협’‘확산될 우려’ 등의 애매모호한 규제조건을 담고 있는데다 전반적으로 집회·시위의 기본권리를 제한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새 집시법은 집회·시위 과정에서 확성기 등을 사용해 생기는 소음과 학교수업 침해,교통장해 등에 대한 예방적 보호조치로서 집회·시위의 기본권을 제한한 것이다.이처럼 일상생활을 침해하고 서민 생업에 지장을 주는 일을 막고자 하는 법 개정을 ‘개악’이라며 불복종운동 대상으로 삼은 것은 세 가지 점에서 문제점을 내포한다.

첫째,문제가 무엇인가를 잘못 본 데 따른 오류이다.학생과 시민·노동단체 등이 주체가 되어 권위체제에 저항할 때는 강한 집시법에 대해 절규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민주화 이후 봇물처럼 터진 과격한 집회·시위에 대해서는 경찰 대응이 오히려 너무 미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또 의사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지만 타인의 생명·재산 보호의 권리,공공이익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따라서 공중의 생활상 불편을 개선할 목적으로 개정된 집시법에 대한 불복종은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한 인식의 오류가 행동의 혼란을 가져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윤리도덕상 문제이다.새 집시법이 개선된 것인가,개악된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윤리도덕상의 규범을 토대로 이루어져야 한다.즉 ‘윤리는 법의 생명’이고 ‘정의가 법제도의 1차적 도덕률’이기 때문에 그 근본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과거에 비해 인권이 크게 신장된 지금 공동체 질서에 역점을 두고 그 속에서 인권의 가치를 상호작용 관계에서 보는 것이 윤리적 의미를 지닌다.

셋째,‘정책가치’판단의 문제이다.법개정에 앞선 작업이 정책가치 판단이다.한 정책이 미래의 바람직한 상태를 실현하려는 목적을 갖는다면,그 수단은 법개정 내용을 충실화하고 집행시의 성공가능성을 가늠하는 쪽으로 선택해야 한다.집시법은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명제 아래 절차를 중심으로 한 법적장치이다.수단과 절차규정이 목적을 질식시켜서도 안 되지만 목적을 중시한 나머지 절차가 방종을 조장해서도 안 된다.시민이 짜증을 느끼고 생명과 재산에 위협을 받기 때문에 개정에 합의한 법이라면 정책판단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아울러 정책수단 선택에는 비용부담과 편익증대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인권보호를 위한 효용보다 무질서에 따른 비용과 고통이 더 크다고 보면 이를 개선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라고 봐야 한다.

새 집시법이 불러온 정부와 비정부기구의 갈등이 조속히 해소되고 양자가 앞으로 바람직한 관계를 맺기를 기대하며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째,정부와 비정부기구는 인권과 질서유지에 대해 균형적으로 경쟁해야 한다.일방의 가치만 중시하고 다른 가치를 포기한 경쟁은 실패를 가져오기 쉽다.사회단체도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측면을 염두에 두고 경쟁에 나서야 한다.

둘째,‘인권’이 생명체를 지닌 물고기라면 ‘질서’는 호수의 물과도 같다.질서의 강물이 혼탁한데 생명체인 물고기가 그 속에서 생존할 수는 없다.사회단체도 환경을 외면해서는 결국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셋째,집회·시위는 시민생활의 활력소가 되어야 하고 병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집회·시위 역시 사회개선운동의 하나로서 봉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봉사자의 타인에 대한 배려,시민생활에 대한 존경이 행동덕목으로 되기를 기대한다.



끝으로 경찰의 치안서비스도 개선되어야 한다.치안서비스는 어느 한 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하여 다수의 병력이 출동했다는 이유로 다른 지역의 방범순찰 수요를 거부할 수 없다는 특성이 있다.경찰인력을 늘려서라도 모든 치안 수요에 서비스를 공급해야 한다.신고된 집회·시위의 자유는 철저히 보호해야 하지만 행사를 방해하는 세력이나 일탈하는 집단에 대해서는 철저히 규제·처벌해야 할 것이다.

이상안 경찰대 교수·명예논설위원˝
2004-03-17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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