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것 아닌 한국적인 것 고민한 ‘연극 거장’ 김정옥 연출가

최여경 기자
수정 2026-02-18 17:50
입력 2026-02-18 16:49
실험정신으로 뭉친 파격과 혁신의 아이콘, 당대 최고의 배우들과 함께한 2세대 연극 연출가, 극단 자유의 시작점이자 기둥, 무대를 향한 끊이지 않는 열정, 한국 연극계의 전설. 한국 현대 연극의 기반을 다진 김정옥 연출가가 17일 오전 별세했다.
광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중앙대 국문과에 입학했다가 서울대 불문과로 옮겨 졸업한 뒤 프랑스로 유학 가 소르본대에서 불문학과 영화학을 공부했다. 유학 시절 프랑스에서 유치진(1905~1974)의 영향을 받아 연극으로 방향을 돌렸다. 1957년 유치진이 파리 유네스코 국제극예술협회(ITI) 본부를 방문해 한국 가입 의사를 밝힐 때 도움을 주기도 했다.
1959년 귀국해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전임강사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연극인의 길을 걸었다. 1961년 이화여대 연극반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연극 ‘리시스트라다’를 처음 연출했다. 이듬해 드라마센터 개관 공연 ‘햄릿’에 조연출로 참여했고, 민중극단을 창단해 ‘달걀’, ‘대머리 여가수’를 올렸다.
1966년 무대미술가 이병복(1927~2017) 감독과 함께 극단 자유를 창립하며 자신의 색깔을 담은 작품을 올리기 시작했다. 자유로운 우리만의 연극을 하자는 취지로 만든 연극 1세대 집단이다. 극단 자유는 박근형, 오현주, 김혜자, 추송웅, 박정자, 김무생, 김용림, 고두심, 유인촌, 박상원 등 당대 최고의 연기자들과 함께 했다. 창단작이자 배우 윤소정(1944~2017)의 데뷔작인 ‘따라지의 향연’(1966)부터 ‘무엇이 될꼬하니’(1978), ‘피의 결혼’(1984), ‘바람은 불어도 꽃은 피네’(1984) 등 한국 연극의 새로운 실험을 품은 작품을 내놓았다. ‘대머리 여가수’의 원작자인 외젠 이오네스코(1909~1994)는 1977년 방한해 김정옥이 연출한 연극을 보고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연출가 김정옥은 서구 위주 시각을 뒤집는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번역극을 연출하면서도 한국적인 것을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한국의 전통연희와 굿 형식을 무대예술로 끌어왔다. 특히 굿이 가진 신명과 한을 무대 위에 풀어낸 연출은 한국 연극의 새 지평을 열었다. 1980년대에 극단 자유와 함께 프랑스, 스페인, 일본 등 10여국에서 작품을 선보이며 국제적인 호평도 받았다.
1991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다. 1995년 6월 아시아인으론 처음으로 ITI 회장이 된 뒤 3연임했고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200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 프랑스 정부에서 주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인 코망되르를 받았다. 일본 닛케이 아시아상(문화 부문),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과 예술원상, 동랑유치진연극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2000), 대한민국예술원 회장(2011)을 역임했다.
2004년 경기도 광주에는 얼굴 박물관을 개관해 운영해왔다. 사람과 삶을 관찰해온 고인이 1960년대부터 수집한 한국과 세계 각국의 인형, 가면 등을 전시한 공간이다.
유족은 부인 조경자씨와 딸 김승미(서울예대 교수),아들 승균(얼굴박물관 이사), 사위 홍승일(전 중앙일보디자인 대표)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 20일.
최여경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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