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돔국·기름떡·카스텔라·롤케이크까지… 섬의 역사와 철학 녹아든 제주 명절상

강동삼 기자
수정 2026-02-16 09:43
입력 2026-02-16 09:24
소고기무국 대신 옥돔국
굴비·조기 대신 옥돔구이
빙떡·기름떡도 빠지지 않아
“멩질(명절)날 카스텔라도 올리고 롤케이크도 올렴수다(올려요).”
명절 차례상이라고 하면 흔히 전통 제수음식을 떠올리지만, 제주도의 차례상은 육지와는 확연히 다르다. 카스텔라와 롤케이크 같은 빵이 자연스럽게 오르고, 제주의 자연환경과 생활사가 고스란히 음식에 녹아 있다.
제주에서는 차례상 국으로 소고기무국보다 생선 미역국을 더 귀하게 여긴다. 특히 옥돔을 넣은 미역국은 최고로 친다. 생선구이 역시 굴비·참조기 대신 옥돔구이가 올라가는 경우가 더 많다. 흰살생선인 옥돔은 제주 차례상의 대표 제물로 여겨진다.
제주 제례 음식은 단순한 음식 나열이 아니라 섬 사람들의 삶과 철학이 담긴 생활문화다. 과거에는 상어고기를 올리기도 했다. 차례 음식에 정답은 없으며 시대 흐름에 따라 재료와 구성이 조금씩 달라져 왔다.
적과 전 역시 중요하다. 전통적으로 네 발 달린 짐승, 들에서 나는 것, 바다에서 나는 것 등 세 가지를 준비하는 것이 원칙이다. 쇠고기 산적과 돼지고기 산적을 함께 올리는 집이 많지만 한 가지만 준비해도 무방하다. 전은 보통 세 가지나 다섯 가지처럼 홀수로 준비하며 동태전, 호박전, 표고버섯전 등이 대표적이다.
과일에서도 제주만의 특징이 드러난다. 육지에서 흔한 대추나 밤 대신 감귤이 중심이다.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 황금향 등 만감류는 물론 최근에는 바나나, 샤인머스캣, 파인애플, 망고 같은 아열대 과일까지 차례상에 오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제주 차례상의 하이라이트는 떡이다.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자연과 우주를 상징한다. 시루떡은 땅, 인절미는 밭을 의미하고 그 위에 해·달·별을 상징하는 떡을 올린다. 떡 하나에도 세계관이 담겨 있는 셈이다.
여기에 제주만의 독특한 풍경이 더해진다. 카스텔라, 롤케이크, 단팥빵 같은 빵류가 차례상에 오르는 모습이다. 과거 쌀이 귀했던 제주에서 보리나 밀가루로 만든 발효떡 문화가 빵으로 이어졌다는 해석이 많다. 지금도 명절에 친척 집을 방문할 때 서양식 빵을 사 들고 가는 문화가 남아 있다.
특히 제주 명절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 기름떡이다. 뜨거운 물로 반죽한 찹쌀가루를 톱니바퀴 모양으로 찍어 기름에 지져 만든다. 별 모양이어서 ‘별떡’이라고도 불린다. 지져낸 뒤 설탕을 뿌려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특징이다.
메밀전병을 닮은 빙떡도 제주를 대표하는 별미다. 메밀 반죽을 얇게 부쳐 무채와 돼지비계를 넣어 말아 만든다. 담백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특징이다. 지역에 따라 멍석떡, 홀아방떡, 전기떡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제주 제례문화의 또 다른 특징은 문전제다. 조상 제사를 지내기 전 집을 지키는 문전신에게 먼저 제를 올리는 풍습이다. 차례상 옆에 약식 문전상을 차리고 제물을 나눠 올린 뒤 일부는 밖에 던지는 ‘고수레’를 하기도 한다. 유교 제례와 무속 신앙이 자연스럽게 결합된 제주만의 전통이다.
예부터 제주 사람들은 명절을 ‘쇠는’ 날이 아니라 ‘먹는’ 날이라고 표현했다. 친척 집을 돌며 차례를 지내고 음식을 나누는 문화가 강했기 때문이다. 이웃과 괸당이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던 풍경은 지금도 제주 명절의 중요한 정서로 남아 있다.
제주 차례상은 결국 한 상의 음식이 아니라 자연과 조상, 그리고 신과 함께 살아온 섬 사람들의 삶의 기록인 셈이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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