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버지 딸’로 70여년 살아왔는데… 4·3이 갈라놓은 가족, 국가가 바로잡다

강동삼 기자
수정 2026-02-13 17:50
입력 2026-02-13 17:50
오영훈 지사, 고계순 씨에 결정서 전달
4·3으로 뒤틀린 가족관계 국가가 첫 시정
70여년 만에 ‘친아버지 딸’로 돌아와
4년 제도 개선 결실… 500건 넘는 정정 심의중
가족관계 정정 신청 기한 8월 31일까지
“한시도 아버지를 잊은 적이 없었는데, 이제야 한을 풀 수 있게 됐습니다.”
70년 넘게 ‘작은아버지의 딸’로 살아온 한 여성이 마침내 친아버지의 이름을 되찾았다. 제주4·3이 남긴 상처가 제도 개선을 통해 처음으로 바로잡힌 상징적 사례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제주시 고계순(77)씨 자택을 찾아 가족관계 확인 ‘결정서’를 직접 전달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날 전달된 결정서는 제주4·3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가 의결한 공식 문서다.
제주4·3으로 왜곡된 가족관계를 국가가 바로잡는 첫 결정이 내려졌다. 희생자의 자녀가 70여년 만에 친자관계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으면서, 제도 개선을 통한 실질적 피해 회복이 본격화될지 주목된다.
1948년 6월 태어난 고씨는 출생신고 이전인 같은 해 12월 아버지를 4·3으로 잃었다. 당시 가족은 희생자 유가족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속에 고씨를 작은아버지 자녀로 호적에 올렸다. 이후 고씨는 70여 년간 친아버지와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살아왔다.
이번 결정서에는 고씨가 희생자 고석보 씨의 친생자라는 점이 명시됐다.
4·3위원회는 이날 고씨를 포함해 4명에 대해 희생자와 사실상 자녀 간 친자관계를 확인했다.
그동안 가족관계등록 제도상 생부가 실종되거나 사망해 유전자 검사가 불가능할 경우 친자관계를 인정받기 어려웠다. 그러나 4·3특별법 개정을 통해 사실관계 조사와 심의를 거쳐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특례가 마련됐다.
이번 결정은 2021년 4·3특별법 전면 개정 이후 약 4년간 이어진 제도 정비의 결과다.
2023년부터 친자관계 확인과 가족관계등록부 작성 신청이 본격 접수됐고, 이후 사실조사와 심의를 거쳐 이번 첫 결정이 내려졌다.
현재 가족관계 정정 관련 신청은 500건 이상 접수돼 조사와 심의가 진행 중이다. 신청 기한은 오는 8월 31일까지다.
도는 이번 결정을 시작으로 가족관계 정정 처리 속도를 높인다는 방침이다. 2024년 7월 특별법 일부 개정으로 사실혼 배우자와의 혼인신고, 사실상 양자와의 입양신고 특례가 추가됐으며, 같은 해 9월부터 신청을 받고 있다. 현재 총 5가지 유형의 가족관계 정정 신청이 접수돼 사실조사가 진행 중이다.
오 지사는 “70여 년을 침묵해야 했던 한 가족의 역사를 바로잡아 기록한 일” 이라며 “희생자와 유족들의 숙원인 실질적 피해 회복을 위해 국회에 계류중인 4·3특별법 개정안 등을 포함해 제도 개선도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은 단순한 가족관계 정정 차원을 넘어 국가 폭력으로 단절된 개인의 삶을 복원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남아 있는 신청 건 처리 속도와 추가 제도 보완 여부가 향후 과제로 꼽힌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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