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유감 표명’의 전략…사과가 만든 국면 전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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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원 기자
수정 2026-02-16 09:00
입력 2026-02-16 09:00

남북 관계사에서 반복된 ‘유감 정치’
북한 응답 촉각…대화 재개 분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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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10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린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10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린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북한 무인기 침투 사건’과 관련해 북측에 깊은 유감을 표명하면서 북한과의 대화 재개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남북 관계사에서 유감 표명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국면을 전환하는 계기로 작용한 사례가 적지 않았던 만큼 이번 메시지가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16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북한의 대화 재개 여부와 관련한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통일부는 개성공단 폐쇄 10주년을 맞이한 지난 10일 대변인실 명의로 낸 ‘개성공단 중단 10년 계기 입장’에서 “2019년 1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단을 재개할 용의’가 있음을 직접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측이 아무런 상응 조치를 취하지 못해 공단 재가동의 결정적 기회를 놓친 바 있다”며 “이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같은 날 정 장관은 ‘북한 무인기 사건’에 대해서도 “북측은 2020년 서해공무원 피격 사건 당시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직접 남녘 동포들에게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사과 의사를 밝힌 바 있다”며 “이 자리를 빌어 이번에 일어난 무모한 무인기 침투와 관련해 북측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북한도 정부의 유감 표명에 반응했다. 김여정 부부장은 지난 13일 ‘한국당국은 주권 침해 도발 방지 조치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라는 제목의 담화를 발표하고 “나는 새해 벽두에 발생한 반공화국 무인기 침입 사건에 대해 한국 통일부 장관 정동영이 10일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시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이를 비교적 상식적인 행동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 당국은 자초한 위기를 유감 표명 같은 것으로 굼때고 넘어가려 할 것이 아니라 우리 공화국 영공 침범과 같은 엄중한 주권침해 사건의 재발을 확실히 방지할 수 있는 담보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일부가 같은 날 두 차례나 유감을 표명한 것을 두고 일각에선 저자세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에 통일부는 지난 11일 “남북 간 신뢰가 있을 때는 서로 잘못을 인정하고, 유감표명 및 재발방지 약속도 했으나 신뢰가 사라진 불신과 증오의 적대 국면에서는 잘못에 대해 사과와 유감은 커녕 막말과 증오의 거친 말만 오갔다”며 “남북 간 신뢰의 국면을 만들고 평화공존으로 나아가려는 과정에서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남북 관계사에서 유감은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 긴장을 낮추는 신호로 작동해 온 사례가 적지 않다. 유감 표명은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일종의 외교적 전술 성격도 짙기 때문이다.

북한도 여러 차례 남측에 유감을 표시했다.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 당시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위임에 의하여 막심한 인명피해를 초래한 1996년 9월 남조선 강릉 해상에서의 잠수함 사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한다”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그러한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며 조선반도에서의 공고한 평화와 안정을 위해 유관 측들과 함께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2002년 제2연평해전 이후에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북한은 전화 통지문을 통해 “서해상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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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진(오른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황병서 북한 총정치국장이 2015년 8월 25일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김관진(오른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황병서 북한 총정치국장이 2015년 8월 25일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2015년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폭발 사건에서도 북한은 유감을 표명했다. 당시 8·25 남북 합의에서 북측은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입은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하면서 군사적 긴장 수위를 낮췄다. 북한은 그동안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잘못을 분명히 인정하지 않는 듯 했지만 당시엔 공동합의문에서 비교적 명확하게 적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 정부도 유감을 표명한 사례가 있다.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앞두고 일부 보수 단체가 인공기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를 불태우자, 북한은 “존엄을 모독했다”며 대회 불참을 선언했다.

사태가 악화되자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상대방의 국기나 지도자를 모욕하는 행위는 적절치 못하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노 대통령의 유감 표명 이후 북한은 7시간 만에 다시 참가 의사를 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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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8월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일부 보수단체의 북한 인공기를 불태우는 등의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대회의 차질없는 진행을 당부하고 있다. 서울신문DB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8월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일부 보수단체의 북한 인공기를 불태우는 등의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대회의 차질없는 진행을 당부하고 있다.
서울신문DB


이번에도 정부의 유감 표명이 국면 전환의 역할을 할 지 주목된다. 다만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 부부장의 담화는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한 남북 대화의 입구를 열기 위한 차원이 아니라 한국 책임론을 확정하고 재발을 경고하는 일방향적 메시지 성격”이라고 분석했다.

이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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