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개천에선 용 못 나온다?… 비수도권 청년 ‘가난 대물림’ 확률 80%

황비웅 기자
수정 2026-02-11 17:52
입력 2026-02-11 15:28
‘용이 될 재목이 강으로’ 가는 것을 돕는 이동성 강화 필요…지역별 비례선발제 확대
‘작은 개천에서 큰 강으로 탈바꿈’시키는 노력 강조…비수도권 거점대학 교육 경쟁력 강화
경남의 한 중소도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30대 초반 A씨. 서울로 올라와 대학을 졸업하고 잘 나가는 대기업에 취업한 그는 현재 연봉 1억원 가까이 받으며 내집 마련에도 성공했다. 반면 함께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집안사정이 어려워 지역 사립대에 입학한 B씨는 지역 중소기업에 입사해 3000만원대의 연봉을 받는다. 지역에서 결혼한 뒤 전세에 살고 있다. 두 사람의 출발선은 같았지만, 지역 이주 여부에 따라 소득과 자산의 격차는 확연히 벌어졌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은 점점 옛날이야기가 돼 가고 있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에게 그대로 이전되는 ‘부의 대물림’ 현상이 최근 세대로 갈수록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지방에서 태어나 고향에 남은 청년들의 경우, 부모가 소득 하위권이면 자녀 역시 하위권에 머무는 비율이 8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11일 공개한 ‘지역 간 인구이동과 세대 간 경제력 대물림’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와 자녀 간 ‘부의 대물림’이 소득과 자산 모두 최근 세대에서 정도가 심해지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한은 연구진이 한국노동패널(KLIPS) 미시자료를 분석한 결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함께 공동으로 진행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세대 간 경제력 대물림 정도를 나타내는 소득 백분위 기울기(RRS)는 0.25로, 부모 소득 순위가 10계단 상승하면 자녀 소득 순위는 평균 2.5계단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백분위는 같은 연령대 안에서 소득 순위를 100 기준으로 환산한 값으로, 숫자가 높을수록 상위 소득층에 해당한다. 이를 토대로 부모와 자녀의 소득이 얼마나 함께 움직이는지를 추정한 것이 RRS다.
자산의 대물림은 더욱 뚜렷했다. 자산 RRS는 0.38로 소득보다 훨씬 높았다. 소득보다 자산 중심의 세대 간 격차가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세대별로 보면 최근 세대일수록 대물림 현상이 더 강화됐다. 1970년대생 자녀의 소득·자산 RRS는 각각 0.11, 0.28이었으나, 1980년대생에서는 0.32, 0.42로 크게 상승했다.
또한 자녀가 부모 품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 세대 간 대물림이 완화되는 경향도 확인됐다. 실제로 부모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자녀의 평균 소득백분위는 부모보다 6.5% 포인트 상승했지만, 고향에 남은 비이주 자녀는 오히려 2.6% 포인트 하락했다. 또한 이주 자녀의 소득·자산 RRS(0.13, 0.26)는 비이주 자녀(0.33, 0.46)보다 크게 낮았다.
다만 이주 효과는 출생 지역에 따라 달랐다. 수도권 출생 자녀가 수도권 내에서 이주한 경우 소득 RRS는 0.06으로, 같은 지역에 머문 집단(0.38)보다 현저히 낮았다. 반면 비수도권 출생 자녀는 이주집단(0.17)과 비이주집단(0.30) 간 차이(이주효과)가 수도권보다 작았다.
비수도권에서는 가난이 대물림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비수도권에서 태어난 1971~1985년생 중 부모 소득이 하위 50%였던 경우, 자녀 세대에서도 하위 50%에 머문 비율은 50%대 후반이었다. 그러나 1986~1990년생에서는 이 비율이 80%를 넘어섰다. 하위 50%에서 상위 25%로 도약한 비율은 같은 기간 13%에서 4%로 급감했다.
보고서는 정책제언으로 ▲지역별 비례선발제 도입 ▲비수도권 거점대학 교육 경쟁력 강화 ▲거점도시 중심의 산업·일자리 집중 투자 등을 제안했다.
정민수 한은 조사국 지역경제조사팀장은 “근본적으로 비수도권 거점대학이 소수의 분야라도 상위권 대학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도록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며 “장기적으로 비수도권 내 세대 간 대물림을 완화할 수 있도록 산업과 일자리 기반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거점도시 중심의 지역 성장이 필요하며, 이는 지역 간 이동성 강화와 계층 대물림 완화의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있다”면서 “최근 논의 중인 행정구역 통합 역시 거점도시의 위상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황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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