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뒤흔든 전설의 ‘그라비아 모델’…중의원 선거 ‘초스피드 당선’ 대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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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은 기자
김성은 기자
수정 2026-02-09 16:35
입력 2026-02-0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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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모리시타 치사토(왼쪽)와 2000년대 모델 시절 사진. 자민당 홈페이지·엑스(X) 캡처
8일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모리시타 치사토(왼쪽)와 2000년대 모델 시절 사진. 자민당 홈페이지·엑스(X) 캡처


2000년대 일본 최정상 그라비아 모델로 활약한 모리시타 치사토(44)가 8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야당 중진을 물리치고 개표 직후 ‘초스피드 당선’을 확정지었다. 연예계를 떠난 지 7년 만에 이룬 정치적 복수극은 다카이치 사나에 정권에 대한 높은 지지가 만들어낸 대이변으로 평가받는다.

닛케이와 요미우리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자민당 소속 모리시타 치사토 후보는 이날 미야기 4구 개표에서 중도개혁연합 공동간사장인 아즈미 준(64) 전 재무장관을 꺾었다. 아즈미 의원은 1996년 첫 당선 이후 10선을 거듭하며 이 지역을 철옹성처럼 지켜온 인물이다.

투표 마감 시간인 오후 8시가 넘자 개표가 시작되기도 전에 압도적인 출구조사 결과만으로 모리시타 후보의 당선은 확실시됐다. 사무실에 모인 100여 명의 지지자들은 환호성을 터뜨렸다.

모리시타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지역을 위해 일하며 일본 열도를 강하고 풍요롭게 만들겠다”며 활짝 웃었다.

모리시타는 2001년부터 레이스퀸과 그라비아 모델로 활동하며 연예계 최정상 인기를 누렸다. 2019년 연예계를 은퇴한 뒤에는 정계에 뛰어들었다.

2021년 중의원 선거에 처음 도전했지만 당시 입헌민주당 소속이던 아즈미 의원에게 패배했다. 낙하산 후보라는 비판을 받으며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2024년 비례대표 도호쿠 블록에서 2위를 차지하며 국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낙하산 이미지를 벗어내기 위해 모리시타가 선택한 전략은 발로 뛰는 거리 활동이었다. 유권자 한 명 한 명에게 정책을 호소하는 모습은 ‘거리 연설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결정타는 다카이치 사나에 정권의 높은 지지율이었다.

선거 진영 관계자는 “아즈미 의원의 지반이 워낙 단단해서 솔직히 따라잡았다는 실감이 없었다. 정말 힘든 선거였다”면서도 “현 정권이 출범한 이후 유리한 흐름을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다카이치 정권 출범 당시 환경대신정무관으로 발탁된 모리시타는 정치 경력을 차곡차곡 쌓았다. 선거 공시일인 지난달 27일 센다이시를 찾은 다카이치 총리는 “정무관으로도 활약하고 자민당 부회에 가장 열심히 나오는 여성으로 불린다. 당장 투입해도 손색없는 인재”이라며 모리시타를 치켜세웠다.

자민당 스즈키 슌이치 간사장과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장관 등 중진들도 잇달아 달려와 모리시타에게 힘을 보탰다.

반면 아즈미 의원은 중의원 해산 직전 입헌민주당과 공명당의 신당 결성을 주도한 핵심 인물로, 중도개혁연합 간부로서 전국 각지 고전하는 후보를 지원하느라 지역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선거 막판 언론 조사에서 ‘모리시타 우세’ 전망이 나오자 아즈미 의원은 일정을 급히 변경했다. 자신의 X(엑스)에 “막판에 이시노마키에서 결기대회를 연 것은 오랜만”이라고 쓸 정도로 마지막 이틀간 지역을 누볐지만, 따라잡지 못했다.

요미우리신문은 “모리시타가 당선을 확정지으며 중도개혁연합 공동간사장 아즈미 준을 꺾은 대금성을 올렸다”면서 약자가 전혀 예상치 못하게 압도적인 강자를 꺾었다고 전했다.

김성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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