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맛본 김정은, ‘김일성 정책’ 대놓고 평가절하… 선대 우상화 지우나

신진호 기자
수정 2026-02-08 10:13
입력 2026-02-08 10:13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유제품 생산 농장을 시찰하는 과정에서 이례적으로 선대 지도자가 시행했던 정책을 평가절하하는 발언을 내놨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우상화 표현이 생략되는 동향도 이어져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일 열린 평안북도농촌경리위원회 삼광축산농장 조업식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역사적인 중요 연설’을 했다고 3일 보도했다. 그는 삼광축산농장에 대해 “농촌의 세기적 낙후성이 다분했던 운전군의 막바지골이 현대농촌과 현대축산의 미래를 직관하게 하는 표준실체로, 청사진으로 전변된 것”이라며 “진짜 천지개벽”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우리가 도달하려고 하는 사회주의 농촌 발전의 전망을 바로 여기 삼광리가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면서 이곳에서 축적한 경험과 성과를 확대 발전시켜 “농촌 발전을 새로운 질적 변혁단계에로 이행”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북한 매체 사진을 보면 농장에서는 라클레트, 체다, 모짜렐라 치즈 등 전문적 치즈 종류를 포함해 버터, 요거트 등 다양한 유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특히 라클레트 치즈는 스위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즉석에서 치즈를 녹여 채소, 고기를 싸 먹는 요리에 사용된다.
스위스에서 유학한 김정은 위원장의 낙농업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이 “이 시범적인 사업 목표의 성과적 달성을 위해 당중앙위원회 중요 부서에 직접 과업을 주고 맡아 주관”하게 했다고 언급했다.
특히 이날 김정은 위원장은 선대의 정책을 구체적으로 비판하는 발언을 내놔 눈길을 끌었다.
그는 연설에서 김일성 주석이 1964년 제시한 농촌 건설의 기본 원칙인 ‘사회주의 농촌테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면서 “반세기 이상의 투쟁에도 우리 농촌들이 왜 피폐한 상태를 가시지 못했는지 다시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회주의 농촌테제는 김일성 집권 시기인 1964년 채택된 강령으로, 농촌의 낙후성을 극복하기 위한 기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김정은 위원장은 “솔직히 지난 시기 농촌건설에서 말공부만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상당히 거친 표현으로 선대 정책을 때렸다.
이는 선대의 사업은 성패 여부와 무관하게 ‘성역’으로 삼는 북한 특유의 관성을 깨는 행보로 볼 수 있다.
자신의 치적 사업으로 꼽히는 강원도 세포지구 축산기지에 대해서도 김정은 위원장은 “실정은 마찬가지”라며 성과 미흡을 자인하기도 했다.
선대 우상화와 관련한 표현이 최근 들어 옅어지는 움직임까지 맞물려 북한 정권이 김정은 독자 우상화를 가속하면서 선대 최고지도자의 그림자를 일부 지우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 조선중앙통신이 김정일 위원장의 생일(광명성절·2월 16일) 84주년을 기념하는 예술 축제 개최를 알리며 정작 ‘광명성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2022년 이후 2년에 한번씩 여는 이 축제의 명칭은 2022년(1차)과 2024년(2차) 모두 ‘광명성절경축 인민예술축전’으로 표기됐다. 그러나 지난달 31일 보도에서는 ‘제3차 2.16 경축 인민예술축전’으로 표기됐다. ‘광명성절’ 용어가 ‘2·16’으로 바뀐 것이다.
북한에서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생일은 전통적으로 ‘태양절’(4월 15일)과 광명성절로 각각 불리며 ‘민족 최대 명절’로 꼽힌다.
그러나 2024년 4월 북한 공식 매체는 김일성 생일을 ‘4.15’로 부르며 태양절 명칭을 사실상 대체했다.
지난해 태양절 표현이 꾸준히 쓰이긴 했지만, 그 전과 비교할 때 빈도가 감소했으며 광명성절 명칭도 상당 부분 ‘2·16’으로 교체됐다.
통일부는 지난해 태양절 명칭 사용 빈도가 감소하는 추세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이 독자 우상화를 가속하는 한편 최고지도자 ‘신비화’를 자제하는 것이 배경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그는 김일성, 김정일 시기에 강조해 온 통일이나 민족과 같은 용어를 더는 안 쓰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노동당 규약 서문 등에 관련 용어들이 대거 남아 있는데 5년에 한번씩 개최되는 9차 노동당 대회에서 이러한 용어들이 대거 삭제되거나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신진호 기자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