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조세포탈 돈줄, 이제 바로 묶는다…자금세탁 규제 25년 만에 대수술
박소연 기자
수정 2026-02-05 10:30
입력 2026-02-05 10:30
해외 중고차·의약품 수입업체가 수입대금을 은행을 거치지 않고 가상자산으로 제3자에게 보낸 뒤, 이를 여러 차례 나눠 국내 업체로 다시 송금하며 매출을 숨긴 사례가 적발됐다. 한 불법 사금융 조직은 카드깡과 고액 현금거래로 번 돈을 차명 계좌에 옮긴 뒤 가상자산으로 바꿔 자금 흐름을 감춘 것으로 드러났다. 현금과 가상자산을 섞은 이른바 ‘혼합형 자금세탁’이 반복되고 있지만, 기존 제도에서는 법원 결정 없이는 계좌를 즉시 멈출 수 없어 범죄 자금이 빠져나가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금융위원회는 5일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26년 자금세탁방지 주요 업무 수행계획’을 발표했다. 2001년 특정금융정보법 제정 이후 25년 만에 이뤄지는 전면 개편이다. 가상자산을 활용한 자금세탁 범죄가 일상 범죄로 확산되면서 금융당국이 자금세탁방지(AML) 제도를 전반적으로 손질하는 게 골자다.
핵심은 ‘중대 민생침해범죄 의심계좌 정지제도’ 도입이다. 마약·도박·테러자금조달 등 특정 범죄가 의심될 경우 수사기관 요청에 따라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직접 계좌 정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개정을 추진한다. 현재는 보이스피싱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수사와 법원 명령을 거쳐야만 계좌 동결이 가능한데, 바뀌면 범죄 수익이 이동하기 전에 행정 단계에서 자금을 묶어 추가 범행을 차단할 수 있다.
가상자산을 활용한 자금세탁을 겨냥한 규제도 대폭 강화된다. 그동안 법적 규율 체계 밖에 있던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에게도 기존 특금법상 ‘금융회사등’에 준하는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한다. 개인지갑이나 해외 사업자와의 스테이블코인 거래에 대해서는 추가 확인, 거래 제한 등 대응조치 의무를 적용할 예정이다.
트래블룰(가상자산 송·수신인 정보 제공 의무)도 한층 촘촘해진다. 트래블룰은 가상자산이 거래소 간 이동할 때 송신인과 수신인의 이름, 지갑 주소 등 정보를 함께 전달하도록 하는 제도로, 자금 흐름을 추적하기 위한 장치다. 지금까지는 국내 거래소 간 100만원 이상 거래에만 적용됐지만, 이를 100만원 미만 거래까지 확대하고 수신 거래소에도 정보 확인·요청 책임을 부과한다. 개인지갑이나 해외 거래소와의 거래는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송·수신인이 동일한 경우 등 저위험 거래만 허용하는 방식이다. 가상자산 거래가 은행 송금처럼 추적 가능한 구조로 바뀌는 셈이다.
금융회사와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책임도 강화된다. 금융회사 자금세탁 보고책임자를 임원급으로 격상해 실질적인 책임을 지도록 하고, 연 2회 자율 참여였던 AML 제도이행평가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해서는 영세 사업자를 중심으로 선제 점검을 실시하는 동시에, 법령 위반 사업자에 대해서는 엄정한 제재를 병행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변호사·회계사·세무사 등 특정비금융사업자에 대한 자금세탁방지 의무 도입도 검토해 제도 사각지대를 줄일 계획이다.
박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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