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사회면] 서울 전차여 안녕!/손성진 논설고문
손성진 기자
수정 2018-11-25 23:57
입력 2018-11-25 22:44
미국인 콜브란 등이 청량리에 있던 명성황후릉(홍릉) 행차비를 줄여 주겠다며 고종 황제를 설득해 서대문~청량리 구간에 전차를 개통한 것은 1898년 12월 25일이었다. 1941년 완성된 서울의 전차 노선은 청량리~동대문~세종로, 세종로~서대문~마포, 을지로 6가~을지로입구~남대문, 효자동~세종로, 을지로 6가~왕십리, 남대문~남영동~신용산, 남영동~원효로, 신용산~노량진~영등포, 남대문로 5가~서대문~영천, 종로 4가~창경원~돈암동, 종로 4가~을지로 4가, 동대문~을지로 6가, 세종로~남대문 등 총연장 40여㎞의 다양한 노선으로 서울 교통의 핵심 역할을 했다.
그러나 자동차가 크게 늘면서 전차는 차량 흐름에 방해가 되고 자주 충돌 사고를 일으켜 애물단지 취급을 받게 됐다. 전차 종사자 1400여명의 고용 승계는 큰 문제였다. 서울시는 700여명은 시청 산하기관 등에 재배치했지만, 대우가 나빠지고 화장장 인부, 병원 시체 감시원 등으로 발령 내 반발이 컸다(동아일보 1968년 6월 20일자). 전차 종사자들의 심정을 담은 기사가 있다. “노병은 고철만을 남기고 사라진다. 보내는 정은 시민의 감상뿐만은 아니다. 70년 고락을 같이한 반려자들은 뼈저린 아쉬움 속에서 생계마저 떠나 보낼까 안타까워 밤새 거리에서 버티며 발을 굴렀다.”(경향신문 1968년 11월 30일자)
김현옥 시장은 전차 대신 서울의 외곽에 타이어 바퀴를 쓰는 트램을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김 시장 후임으로 1970년 6월 부임한 양택식 서울시장이 지하철건설본부를 발족해 전차를 대신할 교통수단으로 지하철로 방향을 잡았다. 1~4호선 노선이 그해 11월 정해졌다.
sonsj@seoul.co.kr
2018-11-2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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