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수정 2018-02-22 23:04
입력 2018-02-22 22:42
사랑은 ‘느낌’으로 만들어 간다
사람이 사람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사람이 괴물과 사랑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 이상한 일을 엘라이자(샐리 호킨스)가 한다. 그녀는 아마존에서 포획된 괴물과 사랑에 빠졌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따지고 보면 간단한 이유다. 괴물은 엘라이자에게 괴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괴물은 사물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연인으로서의 ‘그’였다. 반면 보안 책임자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에게 괴물은 이런 대상이었다.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으나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온몸이 비늘로 덮여 있는 기괴한 생물. 죽여서 해부해도 상관없는 ‘그것’이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사랑에 본래 형태가 없다면 그래서 사랑의 형태를 나와 당신이 직접 만들어 가는 것이라면 이 글의 첫 문장을 다음과 같이 고쳐야 할 듯싶다. ‘사람이 사람과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 것처럼, 사람이 괴물과 사랑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존재를 보통 괴물이라고 부른다. 어쩌면 신이 눈앞에 나타나도 그렇게 부를지 모른다. 신이 인간의 불완전한 언어를 쓸 리 없고 무엇보다 신의 형체를 누구도 본 적이 없어서다. 우리는 갈림길에 선다. 스트릭랜드의 길을 따를지, 엘라이자의 길을 따를지.
결국 느낌의 능력이 괴물 혹은 신을, ‘그것’과 ‘그’라는 상이한 형태로 빚으리라. 이것이 ‘셰이프 오브 워터’가 주창하는 사랑의 정치신학이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2018-02-23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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