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몰랐다… 든든한 장남, 우리 오빠 ‘이상’

조희선 기자
수정 2018-01-26 18:00
입력 2018-01-26 17:42
푸른역사 제공
1936년에 발표된 소설 ‘날개’를 쓴 작가 이상(본명 김해경·1910~1937)은 자신의 사후 운명을 미리 짐작이라도 한 것일까. 이 소설의 유명한 첫 문장처럼 오늘날 그는 주로 ‘박제된’ 이미지로 기억된다. 여성 편력이 심한 탕아, 제멋대로 산 광기의 예술가, 천하의 난봉꾼…. 비운의 수식어가 곧잘 그의 이름 앞에 놓이는 까닭은 스물일곱에 스러진 그의 생애가 워낙 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난해하고 실험적인 작품만큼 이상은 정말 괴짜였을까.
이상은 1936년 8월 가족들 몰래 연인과 함께 만주로 떠난 옥희에게 보내는 글에서 동생의 당돌함을 꾸짖기는커녕 앞날을 축복한다. “이왕 나갔다. 나갔으니 집의 일에 연연하지 말고 너희들의 부끄럽지 않은 성공을 향하여 전심을 써라. 패잔한 꼴이거든 그 벌판에서 개밥이 되더라도 다시 고토를 밟을 생각을 마라”라며 옥희의 결연한 의지를 독려하는가 하면 혹시나 여동생이 남겨진 가족에 대한 죄책감을 가질세라 “네가 나갔고 작은오빠가 나가고 또 내가 나가버린다면 늙으신 부모는 누가 지키느냐고? 염려 마라. 그것은 맏자식 된 내 일이니 내가 어떻게라도 하마”라며 안심시킨다.
푸른역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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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책은 문유성씨의 증언을 토대로 생전에 아들을 잘 챙겨주지 못한 데 대한 죄의식을 가지고 산 이상의 어머니 박세창 여사, 그리하여 옥희씨와 아들 문유성씨가 평소 이상에 대해 함구하고 살 수밖에 없었던 연유, 이상과 똑 닮은 옥희씨의 막내아들 문내성씨가 남긴 일기를 소개한다.
일간지 기자 출신의 저자는 문유성씨 부부의 증언과 더불어 ‘지주회시’에 등장하는 인물 오(吳)의 실제 주인공이자 보성고보 후배인 문종혁이 쓴 산문, 문학 친목단체인 ‘구인회’에서 함께 활동한 조용만의 회고기 등 실증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인간 김해경을 다시 꿰어 맞춘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가문의 일족이었던 이상의 혈관을 흐르던 독을 해독하고 부디 평온을 가져다주길 염원했다”고 말한다. 이상의 본모습을 재조명하는 동시에 가족들이 보낸 질곡의 세월을 위로하는 글인 셈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2018-01-2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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