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사회면] 통금 단속 풍경/손성진 논설주간
손성진 기자
수정 2017-10-08 17:55
입력 2017-10-08 17:52
통금 시간이 되면 택시도 과속하기 마련이다. 통금에 쫓긴 택시가 고가도로 위를 달리다 아래로 추락하는 일도 잦았다. 과속 택시가 인명 사고를 내고 도주하는 뺑소니 사건도 흔했다. 통금 위반자들은 경찰서 보호실에 수용됐는데 집중단속을 할 때면 보호실은 움직일 틈이 없을 정도로 혼잡해 인권 문제가 불거졌다. 통금이 임박한 시간에 버스가 만원이 돼 무정차로 통과해 버리면 외곽으로 가야 하는 시민들은 발을 묶이게 마련이다. 여관 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경찰에 항의해 한밤에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특히 눈이 많이 와 교통이 마비되는 겨울이면 귀가는 전쟁과도 같았다. 큰 눈이 내린 1970년 12월 1일 새벽에 도심에서 버스를 못 잡아 통금에 걸린 시민은 무려 1만명이었으나 경찰은 모두 집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배우 고 박노식씨는 4월 어느 날 술을 마시고 차를 몰다 통금에 걸렸는데 “내가 박노식이다”라며 도주하다 전복 사고를 내기도 했다. 바다를 통한 간첩 침투가 잦아지자 정부는 1969년 7월부터 해상통금도 실시했다. 통금 시간에 운행하는 선박은 무조건 격침한다는 무시무시한 내용이었다. 사진은 통금 해제 첫날 밤 풍경을 전한 1982년 1월 6일자 동아일보.
2017-10-09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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