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남 피살] 김정남이 권력 중심서 밀려난 건 1996년 ‘중국식 개혁’ 연설 때문

이창구 기자
수정 2017-02-21 23:42
입력 2017-02-21 22:40
홍콩 주간지 “유학 후 北귀국 뒤” “체제 위협 우려에 김정일 경계”
아주주간은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정남이 1996년 8월 시장경제를 토론하는 집회에 참석해 중국식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연설을 한 것이 후계 경쟁에서 탈락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보도하면서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출신의 탈북시인 장진성의 인터뷰를 실었다. 장진성은 “집회에 거구의 한 젊은 남자가 등장해 자신감 있는 어조로 ‘아버지가 내게 나라 경제를 재정비하라고 지시했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김정남이었다”고 회고했다. 장진성에 따르면 김정남은 당시 집회에서 “경제를 다시 세우려면 중국식 개혁·개방을 빼고는 방법이 없다. 먼저 기업을 세우고 그 자회사를 늘려가는 방법으로 발전시키면 자본주의로 변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장진성은 “마치 다른 세상에 온 줄 착각할 정도로 충격적인 연설이었다”고 회상했다.
김정남의 연설이 끝난 뒤 1주일도 안 돼 평양 중심 대동강 구역의 한 아파트 부근에 ‘광명성 총공사’라는 간판이 세워졌고, 건축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정일은 이때부터 김정남의 언행이 체제를 위협할 것으로 보고 경계했다고 아주주간은 전했다. 김정일은 김정남에게 경제 업무를 떠나 ‘정치를 더 공부하라’고 한 뒤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으로 일하게 했다. 김정남은 의기소침해졌으며, 해외로 떠돌게 됐다고 아주주간은 해석했다.
아주주간은 또 김정일의 마음이 김정남의 친모인 첫째 부인 성혜림에게서 멀어지고 일본 귀국자 출신의 셋째 부인 고용희에게 빠지면서 고용희 슬하의 정은, 정철 두 아들을 총애한 것도 김정남이 밀린 원인이라고 전했다. 1996년은 김정남의 이모인 성혜랑이 서방으로 망명한 시기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2017-02-22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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