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 속 ‘그윽한 향기’ 가을 새벽 채우네
수정 2014-11-08 04:13
입력 2014-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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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한시/안대회 엮고 지음/태학사/236쪽/1만 2000원‘바람도 없이 떠난 잎이 철렁! 땅에 떨어지니/야윈 가지 한올 한올 저녁 안개 속에 걸려 있다./부러진 갈대 마른 연잎이랑 서로 기대서 있을 때 원앙새는 옷이 추워 잠도 채 못 이룬다.’
고려대학교박물관 제공
한시(漢詩)는 현대적인 삶 이전의 세계와 인생을 넓고 다채롭게 표현해 낸 문학이다. 운율을 활용해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고 유려한 시어로 회화적 기법을 발휘하기에 한문학의 백미로 꼽힌다. 한문학자 안대회 교수(성균관대 한문학과)는 “과거에 지식인들이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이 바로 시였고, 문인들끼리 의사소통하는 방식도 시였다”면서 “순수한 감정 표현이야말로 우리 한시가 지닌 큰 매력”으로 꼽는다.
18세기 후반 경기 양평에서 살았던 시인 취송 이희사(1728~1811)의 ‘난초’가 대표적인 사례다. ‘밭에다 곡식은 심지 않고 힘들여 난초를 심었다네./가을 되어 난초가 열매를 맺지 않아도 거문고 품에 안고 후회는 하지 않네.’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자연과 예술을 벗하며 살았던 그는 다른 길만 선택했고 반대로만 살았지만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을 난초에 비유했다.
안 교수는 “이희사의 시를 접했을 때 돈 안 되는 인문학에 매달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노래한 것 같아 가슴에 와 닿았다”고 했다. 책에는 결함의 세계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흠 많은 인생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이 살아 있는 작품들이 많다. 19세기 말 당쟁에 휘말려 유배된 심노숭은 가족들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그러나 담담하게 적어 내려갔다. ‘어린 아들은 문을 뛰쳐나와 좋아라고 웃고 노친께선 문을 열고 절반은 기쁜 내색, 절반은 걱정일세. 산수가 가로막혀 길이 멀어 넋은 잘도 다녀오는데 눈발이 날리는 밤하늘 아래 나는 홀로 시를 읊는다.’
한시의 표현법은 현대인에게 친근한 시각이나 문법과는 많이 다르지만 직설적인 시어로 표현한 것보다 오히려 더 감성을 자극하는 경우가 많다. ‘봄바람은 괜스레 살랑거리고 어느새 달이 떠서 황혼 되었네./오지 않을 그대인 줄 잘도 알지만 그래도 문은 차마 닫지 못하네.’ 영조 임금 시절 전라도 부안의 복아(福娥)라는 기생이 임을 그리워하며 애타는 마음으로 지은 시 ‘봄바람’이다. 황윤석의 ‘이재란고’에 실린 이 시에는 여인의 사무친 그리움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시어는 없다. 다만 대문 닫기를 아쉬워한다는 석(惜)이란 글자를 살짝 드러내 보였을 뿐이다.
안 교수는 “한시가 과거의 향수나 자극하는 낡고 무감각한 문학이 아니며 오히려 20세기 이후의 문학이 놓치고 있거나 무관심하게 대하는 문제를 독특한 감각과 언어로 다루고 있다”며 “지난 시대의 인생과 역사가 고요히 가라앉아 있는 작품들은 지금 읽어도 얼마든지 새롭고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고 강조한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2014-11-0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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