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코티분’ 시절
수정 2012-07-30 00:00
입력 2012-07-30 00:00
어머니가 그걸 바른 모습을 두어 번 봤습니다. 국민학교 운동회 때였습니다. 나중에 찬합도시락을 챙겨 학교 운동장으로 오신 어머니 얼굴에 뽀얀 분가루가 발라져 있었습니다. 가만 보니 얼굴에 바른 분이 낯에 먹히지 않아 얼룩덜룩했고, 어떻게 그렸는지 눈썹은 짝짝이였습니다. 주변에 이 동네, 저 마을 사람들이 빼곡한 터에 내놓고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혹여 그 선생님이 다가오지나 않을까 저어했습니다. 고개를 꺾고 혼잣말로 “분 좀 잘 바르지….” 했는데, 그 말을 들으신 어머니가 넉살 좋게 “그래도 코티분 바른 사람은 나 뿐이네.”라며 손가락으로 꾹, 제 볼을 찌릅니다. 김밥에 아이스께끼도 사먹었고, 사이다도 마셨지만 왠지 분단장한 어머니 모습이 자꾸 밟혀 흥이 나질 않았습니다. 어린 제가 그 코티분이 어머니에게 무슨 의미인지를 알 턱이 없었지요.
그 뒤, 세월이 흘러 외국엘 다녀올 때 사다 준 화장품을 “아까워서 못 쓰겠네.”라며 만지작거리기만 하는 아내의 모습에서 어머니를 봅니다. 아무리 농투산이란들 어머니도 여잔데 왜 안 예쁘고 싶었겠습니까만 평생을 속 시원하게 단장 한번 한 적 없고, 그럴 일이 있게 살지도 않았으니, 그러니 한 줌도 안 되는 코티분 한 통이 앞닫이 장롱 속에서 십년도 넘게 분냄새를 감추고 있었겠지요.
그날, 어머니가 바른 분이 아버지를 향한 은밀한 애모의 정이었는지, 아들 자식 기나 안 죽이려는 배려였는지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어머니도 여자였으며, 가부장제의 이름 없는 희생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가 사 주셨다는 그 코티분에서 어머니가 간직했던 분말 같은 여성성, 말하지 못했던 숭고를 읽습니다.
jeshim@seoul.co.kr
2012-07-30 2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