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주 순회특파원 세계의 법원 가다] 고종, 특사파견 독립호소문 배포
수정 2010-02-16 00:00
입력 2010-02-16 00:00
2차만국평화회의란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그러나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6월30일 ‘헤이그에서의 한국독립호소문’을 프랑스어로 발행해 45개국 대표 239명에게 보냈다. 을사늑약은 ▲고종황제의 승인 없이 ▲일본이 무장 병력을 앞세워 ▲법률을 무시한 채 체결돼 무효라는 내용이었다. 출입기자단이 발행한 평화회의보가 ‘왜 대한제국을 제외하는가?’ ‘축제 때의 해골’이라는 제목으로 호소문과 이위종 인터뷰를 보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1907년 7월14일 오후 7시 이준 열사는 갑작스레 헤이그 호텔방에서 사망했다.
당시 네덜란드 신문은 뺨에 난 종기수술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 전신)는 할복 자결로 보도했다. 사인은 아직도 의문에 싸여 있다. 이 호텔에는 1995년 8월 이준 열사기념관이 세워졌다.
ejung@seoul.co.kr
2010-02-16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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