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판사들과 함께 하는 법률상담 Q&A] 원치않는 희망퇴직을 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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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08-21 00:46
입력 2009-08-21 00:00

선택 여지없는 일방적 희망퇴직 해고에 해당… 구제받을 수 있어

# 사례

A씨가 근무하고 있던 회사가 경기 불황 등으로 ‘희망퇴직제’를 실시하게 됐다. 회사는 A씨에게 퇴직금 등의 지급조건을 우대해 주겠다고 권하면서 불응할 경우에는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고 은근한 압박을 가했다. 결국 A씨는 사직서를 제출했고, 회사는 이를 수리해 A씨를 면직했다

Q A씨는 회사의 권유로 사직서를 제출하기는 했지만 정말 회사를 퇴직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 경우 A씨가 근로계약관계를 합의해지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회사로부터 해고를 당한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법원에 이를 무효로 해달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A 경영상 위기에 처한 기업이 인력 구조조정을 위해 택할 수 있는 전형적인 수단으로는 근로기준법 제24조가 정하고 있는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즉 ‘정리해고’를 들 수 있다. 하지만 근로자들의 의사에 반해 해고를 강행하는 것은 노·사 양쪽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뿐만 아니라, 요건 충족 등을 두고 사후 분쟁의 여지를 남길 소지가 있다. 때문에 기업은 될 수 있으면 정리해고라는 최종적인 수단을 택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인력 구조조정을 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는데, 이런 경우 널리 활용되고 있는 것이 희망퇴직 제도다.

이는 근로자에게 더 높은 퇴직금을 주고 자녀 학자금 지급, 재취업 알선 등의 인센티브를 제시해 근로자들의 자발적인 퇴직을 유도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실제로는 근로자들이 정말로 희망퇴직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의사 표시가 무효임을 이유로 해고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빈번하다.

원칙적으로 판례는 “사용자가 사직의 의사가 없는 근로자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작성·제출하게 한 뒤 이를 수리하는 경우, 이른바 의원면직의 형식을 취해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키는 것은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일방적인 의사에 의해 근로계약관계를 끝내는 것이어서 해고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사직서 제출에 따른 사직의 의사표시를 사용자가 수락, 사용자와 근로자의 합의에 의해 근로계약관계가 해지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용자의 의원면직처분을 해고로 볼 수 없다.”고 하고 있다.

다만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근로자의 진의(眞意)라는 것은 근로자가 진정으로 마음속에서 바라는 사항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근로자가 진정으로 바라지는 않았다고 해도 당시에는 최선이라고 판단해 의사표시를 한 것이라면 이를 내심의 의사가 결여된 ‘진의 아닌 의사표시’로 볼 수 없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당시 또는 앞으로 다가올 회사의 어려운 상황이나 인원감축의 불가피성을 다소 과장해서 설명하고 희망퇴직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신분상 불이익 등을 입을 수 있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만으로는 회사가 사직의사가 없는 근로자에게 사직서 제출을 강요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희망퇴직에 실패해 정리해고를 할 경우 적용될 정리기준, 즉 연령이나 근속기간 등을 고려할 때 정리해고 대상자에 포함될 가능성이 큰 근로자들에게 희망퇴직을 적극 권유한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법원은 특정 사원에 대한 위법한 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회사의 사직서 제출 요구를 견디지 못하고 사직 이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사직서를 제출한 것이라면 사실상 해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예를 들어 회사가 감축대상자들을 일방적으로 선정하고, 그들만을 대상으로 퇴직설명회를 열어 사직서 제출을 종용하는 경우, 불응자들을 보직해임 혹은 대기발령하고 끝까지 사직서를 내지 않으면 해고하는 경우 등이다.

희망퇴직이 사실상 해고로 인정될 경우 이는 곧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에 해당하므로 근로기준법이 정한 일정 요건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이럴 경우 사실상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거의 다라 대부분 근로자가 구제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법원이 개별 근로자를 사후에 구제하는 데에는 법리상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때문에 근로자들은 자신이 처한 현재의 상황과 회사가 제기하는 희망퇴직의 조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심사숙고한 뒤 희망퇴직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배광국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2009-08-2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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