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80] “배려하는 마음 전파… 삭막한 사회에 인간미 불어넣죠”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수정 2009-07-11 00:00
입력 2009-07-11 00:00

[실버세대 희망 Job기] (5) 예절강사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렸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간의 예절을 명시한 신라 화랑의 세속오계(世俗五戒)가 전통으로 이어졌고, 유교의 삼강오륜(三綱五倫)도 사회 기본 윤리로 존중돼 왔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코리안특급’ 박찬호 선수는 마운드에 올라 경기 시작 전 심판에게 모자를 벗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 모습을 본 미국인들은 당시 한국인의 예절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오랜 전통인 예절이 급격한 사회 변화속에 많이 퇴색했다. 서구 문화의 영향으로 예절이 점점 등한시됐고, 반인륜적인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해 사회에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부모형제, 부부, 스승과 제자, 상급자와 하급자 간에 지켜야 할 도리가 무너지고 있는 오늘이다.

이미지 확대
예절강사 최성호(가운데)씨가 한국예절교육협회 부설 한국예절대학원 강의실에서 예절사 2급 응시자들에게 예절강의를 하고 있다. 경찰공무원이었던 최씨는 총경까지 진급했다가 정년퇴임을 한 후 예절강사가 됐으며, ‘예절사들의 예절사’로 불린다. 한국예절교육협회 제공
예절강사 최성호(가운데)씨가 한국예절교육협회 부설 한국예절대학원 강의실에서 예절사 2급 응시자들에게 예절강의를 하고 있다. 경찰공무원이었던 최씨는 총경까지 진급했다가 정년퇴임을 한 후 예절강사가 됐으며, ‘예절사들의 예절사’로 불린다.
한국예절교육협회 제공


●전통예절 체득 세대가 교육 맡으면 좋아

우리 사회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고유 전통인 예절을 되살리자는 목소리가 높다. 삭막해지는 사회를 보다 인간미 넘치는 사회로 만들자는 노력이 한창이다. 이를 위해 5080세대가 고군분투하고 있다.

5080세대는 한국 전통 예절을 몸에 체득하고 있는 세대다. 사회가 급변하기 전 고유 문화와 예절의 본 모습이 어느 정도 남아 있던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또 5080은 최근 변화된 사회의 실상까지 함께 경험해 우리나라 예절의 변화 양상을 그 어떤 세대보다 훤히 잘 안다. 해서 5080세대는 예절을 가르치는 ‘예절강사’로 제격이다.

●예절 교육에 필요한 자격은

예절강사를 하려면 우선 자격증을 따야 한다. 물론 나이 제한은 없다. 예절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에는 대표적으로 한국예절교육협회의 ‘예절사’와 범국민예의생활실천운동본부의 ‘실천예절지도사’가 있다. 두 곳 모두 예절교육자로서 공인 자격을 부여하는 시험을 실시하며 교육 내용도 예절에 관한 전반적인 분야를 다룬다. 차이점이라면 예절사는 생활예절, 기업예절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실천예절지도사는 전통예절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예절사는 1급과 2급으로 나뉜다. 시험은 1년에 2회 실시하며 1회에 30명 정도가 자격을 얻는다. 예절사 2급에 응시하려면 예절교육기관에서 30시간 교육을 받아야 한다. 시험과목은 예론, 현대·생활·기업예절(30%), 관혼상제(30%), 면접 및 실기(40%)이며, 70점 이상 획득해야 합격한다. 예절사 1급은 2급 자격이 있는 사람만 응시할 수 있다. 1급 응시자는 한국예절교육협회에서 주관하는 예절 대학원 과정 150시간을 이수하고, 논문과 연구발표를 통과해야 합격할 수 있다. 합격 기준은 90점이다.

실천예절지도사는 만 19세 이상이면 특별히 의무적으로 교육을 이수하지 않아도 누구나 응시할 수 있다. 시험은 필기, 실기, 면접 3단계로 이뤄지며 단계마다 60점 이상 받아야 합격한다.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실기시험에서 불합격하면 다음번 1차 필기시험은 면제된다.

●자격증 따고 예절강사로 거듭나기

예절강사는 초·중·고·대학 등 교육기관, 시민·복지단체, 기업체, 예식장 등 예절 교육이 필요한 어디든 파견된다. 급여는 시급으로 시민·복지단체의 경우 3만 5000~5만원, 교육기관은 5만~10만원, 기업체는 10만~15만원선이다. 그리고 강의는 보통 2시간씩 하기 때문에 시급의 두 배가 하루 일당이라고 보면 된다. 예식장 주례는 통상 10만원 정도를 받는다.

자격을 따고 난 뒤 혼자서 바로 현업에 뛰어들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한국예절교육협회는 초보 예절강사들을 데리고 선배 예절강사의 강의 현장을 견학한다. 견학 후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면 복지·시민 단체에서 연습·경험 차원으로 선배와 동반으로 예절강의를 한다. 또 뛰어난 전문 예절강사 앞에서 예절강의 발표를 하고 평가도 받는다. 협회에서는 자체적으로 보습교육도 실시한다. 이렇게 해서 강의력이 쌓인 예절강사는 본격적으로 단독 예절강의에 나서게 된다. 처음에는 협회의 도움을 받지만, 강의력을 인정 받은 예절강사는 각 단체에서 서로 모셔가기 위해 경쟁을 하기도 한다.

●예절강사 무엇을 가르치나

예절강사는 말 그대로 예절을 가르친다. 전통예절, 생활예절, 직장예절, 관혼상제, 예학 등에 대한 이론 강의와 실습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간다. 특히 5080세대라면 인생의 선배로서 조언을 해 주는 데 안성맞춤이다. 가르치는 세부적인 것은 절하기, 다도예절, 한복 입기, 상황별 친절 매너교육, 음식예절 등 예절이 필요한 전 분야에 걸쳐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예절강사의 역할은 예법 자체를 가르치는 것보다 예절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예를 통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전파하는 데 있다. 예절은 인격의 표현이자 마음을 담아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조능자 한국예절교육협회 상임이사는 “다른 사람에게 바른 인성과 삶의 모습을 전해야 하는 예절강사는 전통 가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나름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면서 “많은 양의 독서를 통해 품성을 계발하고, 꾸준한 자기관리로 내·외적으로 성숙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지러운 풍속을 바로잡기 위해 어르신들이 발벗고 나선다면 젊은이들에게도 좋은 모범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인기 예절강사 되려면

”학생 눈높이로… 이해 못하면 끈기있게”

이미지 확대
예절사 1급 시험을 통과하고 한국예절대학원을 수료한 20여명의 예절강사들이 서로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예절사 1급 시험을 통과하고 한국예절대학원을 수료한 20여명의 예절강사들이 서로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예절강사는 비교적 노인이 일하기 쉬운 직업으로 꼽힌다. 특별한 전문지식이 필요하지 않고 육체·정신적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노동 시간도 많지 않은 편이어서 예절강사로 일하고 싶어 하는 노인들이 많다.

 최근에는 동화구연·한자·전통문화강사 등 영역이 확장되는 추세다. 동화구연 강사는 주로 여성이, 한자강사는 남성이 많이 하는 편이다. 전통문화강사의 경우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을 가르치는 예절강사로 보면 된다. 모두 학생을 상대로 가르치기 때문에 일의 성격이 비슷하다.

 전문가들은 예절교육을 받는 어린이와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김천문화원에서 노인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송기동 사무국장은 “어린이들이 잘 이해하지 못할 때는 끈기를 갖고 가르쳐 줘야 한다.”면서 “어른이 보기에 당연한 내용을 어린이들이 모른다고 해서 혼내거나 다그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강압적 강사 호응 떨어져 수업에 지장

 송 국장은 너무 엄한 선생님이 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간혹 학생들에게 강압적으로 대하는 강사도 있는데, 이럴 경우 수업 호응도가 떨어지고 수업 흐름에 지장을 준다는 것이다.

 한국예절교육협회 윤경란 교육팀장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자기가 알게 된 것만 고집하고 예절을 고정관념과 같은 ‘틀’로 생각하면 주위 사람이 힘들어진다.”면서 “예절을 무조건 가르치려고만 해서는 안 되고, 가르치면서 본인도 그 예절을 수용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그는 “나이가 들수록 외모를 더 잘 가꾸어야 인기 예절강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본인도 예절 ‘무장’ … 외모 단장·유머 필요

 적극적인 성격은 기본 덕목이다. 남 앞에 나서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예절강사가 되기 위한 교육과정에서는 대부분 ‘두려움 극복’ 전용 수업이 있을 정도다.

 딱딱하게 느낄 수 있는 ‘예절’을 재밌게 가르칠 수 있는 센스도 필요하다. 대한노인회 경기도연합회 이정화 부장은 “예절강사들은 학생들의 호응이 떨어질 때 가장 힘들어한다.”면서 “관심을 사로잡을 만한 본인만의 기술이 있으면 좋다.”고 귀띔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현직 예절강사들의 조언

“예절교육, 특별할 것 없어 우리생활 후손에게 전하는 것”

“곧 손자도 볼 텐데 미리 손자들 교육시키는 셈치고 시작했죠. 특별한 노력이 필요 없으니 처음부터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어요.”

충남 천안시에 사는 최정자(59·여)씨는 어린이집 전문 예절강사로 맹활약 중이다.

평생을 주부로 살아온 최씨는 두 딸이 모두 출가하면서 적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갱년기 우울증도 찾아왔다. 그러다가 친구로부터 ‘예절강사’를 소개받았다. 아이를 좋아하는 자신의 성격과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개구쟁이 말썽엔 모두 내 손자려니…”

요즘 최씨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돌며 예절강사로 활동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어린이집을 돌며 기본적인 예절교육을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 성격이 다정다감한 최씨는 아이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개구쟁이 남자 아이들 때문에 간혹 애를 먹기도 하지만 ‘모두 내 손자려니 생각한다.’는 최씨다.

그는 “예절은 특별한 게 아니다. 우리 생활을 후손에게 전수해 준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힘 안들고 지식 발휘… 노인들 직업

강원 원주시에 사는 허만봉(64)씨는 2년 전부터 예절공부를 시작하며 예절강사로 활동했다.

초등학교 교사로 평생을 헌신해온 허씨에게 ‘예절강사’만큼 적합한 직업도 없었다.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살았기 때문에 은퇴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예절강사를 접하게 됐다.

허씨는 현재 교직경험을 살려 예절강사의 또 다른 선생님 격인 ‘예절지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어린이들과 직접 접촉하며 예절을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직업을 원하는 또래에게 전문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도 보람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예절강사야말로 60~70대에게 정말 좋은 직업”이라면서 “체력적으로 무리가 가지 않고, 본인의 지식을 십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살고 있는 최성호(72)씨는 경찰공무원으로 총경까지 진급했다가 정년퇴임을 한 후 예절강사가 됐다.

현재 최씨는 한국예절교육협회 전국 지회에 출강하며 ‘예절사들의 예절사’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현직 경찰 시절 무술솜씨가 뛰어났던 최씨는 예절 강의에서 무도(武道)를 가르치기로 유명하다. 그는 2007년 71세의 나이로 전국 태권도대회 장년부문에 출전해 입상하는 등 지금도 변함없는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이민영 이영준기자 min@seoul.co.kr
2009-07-11 2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