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누항 나들이] 죽산 조봉암사건을 다시 떠올리는 이유
수정 2009-06-10 00:00
입력 2009-06-10 00:00
이렇게 장황하게 죽산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고 있는 것은 그 재판과정에서 한 재판관이 보여준 용기있는 결단이 최근 새삼스럽게 생각나서다. 1심의 재판장이던 그는 세간의 예상을 뒤엎고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죽산의 평화통일론에 손을 들어주었다. 북진통일 이외의 어떠한 방식의 통일도 논해서는 안 되는 서슬 퍼런 시대에 말이다. 매일처럼 경찰의 노골적인 비호 아래 용공판사를 규탄하는 데모가 벌어졌고, 당국은 공공연히 그에게 사퇴 압력을 가했다. 그 뒤 압력을 이겨 내지 못하고 그가 사퇴한 것으로 알지만, 그가 남긴 기록 한 대목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책(아마도 ‘어느 재판관의 고뇌’라는 책이 아니었나싶다)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육이오 때 그는 부역자들을 재판하는 고역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급조된 계엄법은 재판관의 재량을 한껏 제한, 유죄인 경우 사형, 무기, 15년의 세 가지 형을 선고하는 자유밖에 주지 않았다. 그는 명확한 증거가 없는 한 거의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으며, 범법의 심증이 있을 경우에도 그것이 가벼운 것이면 무죄로 판결했다. 강제 동원되어 노래 몇 마디 부르고 박수 몇 차례 쳤다가 15년의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는 불행한 삶이 있게 하는 것이 법의 취지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법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 위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통한 죽음과 죽산의 사법 살인은 서로 닮은 곳이 없다. 그런데도 문득 죽산 사건이 생각난 것은 그 재판관이 피의자에 대해서 가졌던 태도와 노 전 대통령을 다룬 검찰의 태도가 너무나 판이해서였다. 그 재판관은 피의자는 유죄가 확정되기까지는 일단 무죄라는 생각으로 피의자를 대했으며, 피의자도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피의자를 조롱하고 망신주고 모욕하는 일을 법관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터부로 여긴다는 뜻의 진술도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이런 합리적이고 온유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검찰에 몇 사람만 있었어도, 전직 대통령의 자결이라는 불행한 광경을 우리는 역사에서 보지 않았어도 좋았을는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새삼스럽게 그를 생각나게 하며 죽산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법도 역시 사람을 위해서 기능하는 것이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그 법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인간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인간적인 사람들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의 진술도 잊히지 않는다.
시인
2009-06-1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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