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석의 스크린 엿보기] 피아노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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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8-11-01 00:00
입력 2008-11-01 00:00

뻔하지만 FUN한 어린천재 성공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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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있다. 제대로 음악을 배운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숲속에 덩그러니 놓인 피아노를 누구보다 잘 치는 소년. 그 소년은 우연히 스승을 만나게 되고, 재능을 인정받아 피아노 대회에 나가게 된다. 이 정도 이야기만 들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소년이 성공하는 이야기는 스포츠나 예술 분야를 다룬 영화에서 아주 익숙한 설정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그 익숙한 이야기가 언제나 감동적이라는 점이다.

‘피아노의 숲´은 두 소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인공인 카이가 피아노를 치게 된 것은, 그저 피아노가 숲에 있었기 때문이다. 천재 피아니스트였지만 사고로 연주를 할 수 없게 되어 시골에 내려온 음악선생 아지노가 버린 피아노. 카이는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피아노에 풀어놓는다. 즐거울 때건, 슬플 때건 피아노를 치면서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 말 그대로 무아지경인 셈이다. 도시에서 내려와 카이의 친구가 된 화자 슈헤이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피아니스트 집안에서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쳐왔던 슈헤이에게 피아노는 공부이고, 반드시 해야 할 무엇이다. 즐기면서 피아노를 치는 카이와 달리, 슈헤이에게는 일종의 의무이고 숙제다. 대회에서 피아노를 치는 소년, 소녀의 대부분은 슈헤이와 같은 부류다.

그렇다면 ‘피아노의 숲´은 단지 천재의 우월함을 인정하는 애니메이션일까? 카이의 재능이 빛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두 가지의 난관이 있다. 하나는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연습하면 할수록 카이도 슈헤이의 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항상 즐거울 수 없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세상의 인식이다. 카이의 자유롭고 격식에서 벗어난 연주는, 쉽게 인정받지 못한다. 단지 잘한다는 정도를 뛰어넘어 모든 것을 바꿔버리는 힘이 있어야만, 천재적인 재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피아노의 숲´은 카이가 두 개의 난관과 맞서 싸우는 과정을 충실하게 그려낸다.

원작인 이시키 마코토의 만화는 카이와 슈헤이의 만남을 시작으로, 그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뻗어나간다. 하지만 고지마 마사유키가 애니메이션으로 각색한 ‘피아노의 숲´은 그들의 초등학교 시절만을 그리고 있다. 슈헤이와 카이를 대비시키면서, 그들이 대립하다가 결국은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성실하고 정석을 따르는 각색이다. 원작에 비해 심리 묘사는 좀 약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카이의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은 정말 좋다.

영화평론가
2008-11-01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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