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먼곳에’의 이준익 감독
“그동안 제가 남성주의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봐왔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저도 모르게 형성된 가치관이 영화에 녹아들었던 거죠. 그래서 이번엔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어요.20세기 남성들이 저지른 최대 부조리인 전쟁을 반성하게 하고 싶었어요.”
이 영화는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에 이은 이준익 감독의 음악영화 3부작의 완결판이다. 이처럼 그가 음악이란 공통된 주제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세 작품에 쓰인 음악의 공통점은 세월은 흘렀지만 그 빛은 바래지 않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명곡이라는 점이에요.20∼30년 전 부모님 세대가 들었던 음악들이 흘러간 ‘구닥다리’도, 촌스러운 노래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죠. 이를 통해 세대간의 작지만 의미있는 소통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죠.”
이처럼 이 감독은 우리가 잊고 지내거나 마음 속에 묻어둔 추억들을 꺼내 한번쯤 돌아보게 하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그의 영화들은 가끔 과거의 향수에 얽매여 있다거나 스타일이 진부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서양 문화의 전통은 ‘고품격’이라는 이름으로 그 가치를 추앙하면서도 정작 우리의 것들은 그렇지 못한 게 안타까워요. 비틀스, 엘비스 프레슬리 등 외국의 오래된 음악들은 현재까지 사랑받지만,30년의 시간을 앞당겨 현대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 김추자나 ‘에릭 클랩튼보다 기타를 더 잘 치는’ 한국 록의 신화 신중현은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거든요.”
그런 만큼 그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역사와 전통이 영화적 소재의 ‘보물창고’가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모두들 인문학의 위기라고 하는데, 전 오히려 그 반댑니다. 앞으로 역사를 바탕으로 한 인문학이 그 가치를 인정받고 돈이 되는 시대가 분명히 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그렇게 열광하는 ‘명품’도 결국은 그 제품이 지닌 오랜 역사를 돈 주고 사는 것이니까요.”
‘님은 먼곳에’는 영화계에 소문난 짠돌이로 알려진 이 감독이 70억원의 순제작비를 들여 만든 대작으로 흥행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흥행부담은 전혀 없어요. 솔직히 전 ‘왕의 남자’가 왜 1000만이 들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영화는 산업보다는 문화적인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흥행은 관객이 만들어주는 거니까요.”
이번 영화가 음악영화의 마지막이자 여성영화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이 감독. 그의 다음 계획은 뭘까.
“여성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이 생겼고, 더 이야기해 보고 싶은 부분이 있어요. 앞으로 어떤 영화가 운명처럼 다가올지는 모르겠지만, 다음번엔 사랑에 대한 인간의 본능과 집착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글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2008-07-19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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