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세 할머니의 바람을 잡아주오”
수정 2008-06-30 00:00
입력 2008-06-30 00:00
40년 함께 살던 할아버지 통사정
궁합도 잘맞던 원앙부부 슬하엔 아들넷이 주루룩
그러니까 최노인이 31세, 김노파가 23세때.
이보다 먼저 최노인은 18세때 자기보다 5세 아래인 정(鄭)모여인과 정식 결혼, 딸을 하나 얻었으나 아들을 낳지 못해 별거생활을 하고 있었던것. 김노파 역시 결혼은 일찍했으나 남편이 돈벌러간다고 일본으로 건너간뒤 소식이 끊어져 죽은것으로 단정해버리고 마땅한 자리가 나면 개가를 할 속셈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당시 최노인의 따분한 처지를 잘알고 있던 이웃집 노파가 어느날 최씨집에 들러 김여인에 관한 이야기를 건네자 즉석에서 중매를 서줄것을 부탁받게 됐던 것.
며칠이 지나자 최씨와 김여인이 한자리에 앉게 되었고 한평생을 함께 할 약속이 쉽게 이뤄졌다.
그래서 김여인은 최씨집 안방에 들어앉게 되었다.
『그 사람이 젊을때부터 색을 좋아하기는 했읍니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던지 얼굴에 홍조까지 띠며 옛날얘기를 했다.
둘사이엔 용케 궁합이 맞았던지 바라던대로 사내아이만 넷을 얻었다. 지금은 다 자라 올해 32세된 큰아들은 서울에 살고 있고, 막내아들은 군에 복무중.
최노인은 원래 서울 토박이였으나 일제때 전남 장흥으로 피난갔다가 거기서 기반을 잡아 살게되었다.
영감님 중풍들자 찬바람 세든 40대 장년과 드디어
거기서 열심히 일한 보람으로 양복점과 양화점을 직접 경영하게 되었고, 새살림을 차린뒤에도 사업은 날로 번창해 생활은 넉넉했다고 한다.
또 나이도 비교적 젊은때라 그런대로 잠자리의 만족을 줄수 있었다는 것.
68년봄. 나이를 먹고보니 아들도 자라 가정도 가져야할 처지에 놓였고 자신도 고향으로 돌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바로 가산을 정리해 서울 정릉으로 이사를 했다.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던 최노인에게 비극의 서장이 올려진것은 서울로 이사한 이듬해 여름.
어느날 비탈길을 걸어가다 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졌다.
그뒤 다친 상처가 점점 악화되어 결국 중풍이 되었고, 오른쪽 팔과 다리를 제대로 쓰지못하는 불구가 되면서 부터.
그날로부터 몸이 말을 듣지않게 되었다. 찰떡같은 부부사이가 차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내는 바가지를 긁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제대로 부부간의 잠자리가 이루어 지지않게되니 있을법도 한 일이라고 이해를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날이 갈수록 바가지의 도는 더해 가기만했다.
생각다 못한 최노인은 『피차 늙은 몸이니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 아니겠소』하며 타이르고 분위기를 바꿔볼 생각으로 지난해 봄 공기도 맑고 조용한 상도동으로 이사를 했다는 것.
그러나 이것이 파탄의 결정적인 화근이 될줄이야.
집도 넓고 너무 적적한것 같아 아랫방에다 세를 주었다.
고물상을 한다는 김(金)모씨(42)가 들었다.
김씨는 15년전 결혼했다가 5년전 아내를 병으로 잃고 13세된 딸 하나와 사는 홀아비였다.
김씨가 최노인집에 들어온 뒤인 지난해 가을이었다.
하루는 최노인이 바람쐬러 밖에 나갔다가 밤11시쯤 들어왔더니 아내가 김씨방에서 황급히 옷자락을 여미며 나오더라는 것.
얼핏 보기에도 이상한 예감이 들었지만 『아들같은 사람에게 설마 그럴리가…』하는 생각으로 덮어두었다.
그런일이 있은 뒤 김노파는 거의 매일 저녁 김씨방으로 들어갔다.
어떤날은 아예 김씨방에서 자고 새벽에 돌아오기도했다.
어느날 아침 최노인은 피로한 안색을 한채 아침에야 방으로 돌아온 김노파에게 『어디에서 무엇하고 이제 돌아오는거냐?』고 다그쳐 물었다.
그러나 너무나 엉뚱한 대답-.
“나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 찾아가는게 뭐가 나빠요”
『당신은 병든 몸이지만 김씨는 정력이 넘치는 사람이오. 나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 찾아가는 것이 잘못이오?』
최노인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최노인은 할 말조차 잃었다.
완전히 미쳐버렸구나 하는 생각이든 최노인은 그날부터 온갖 방법을 다 써가며 설득을 시키고 다시 마음을 돌릴것을 하소연했다는 것.
그러나 최씨의 간곡한 하소연도 쓸데 없는 말이었다.
김노파의 아랫방 출입은 날이갈수록 뜨거워져 가기만했다.
최노인은 마누라에게 만류를 해도 듣지 않자 비장한 각오를하고 타협점을 찾기로했다.
『초저녁엔 가지말고 새벽에 가서 일만 치르고 오던지 해달라』고 - 제의를 했다는 것.
김노파는 새벽에만 가기로 약속을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얼마가지않아 다시 초저녁부터 가고있다는 것이었다.
『막내며느리가 한집에 살았지요. 남편이 제대할때까지 우리들 뒷바라지 해주기로하고. 그렇지만 눈치를 챈 며느리마저 동네가 부끄럽다고 친정엘 가버렸읍니다』라며 최노인은 한숨을 짓는다.
『지금 생각하니 본처가 좋았읍니다. 말없고 얌전하고. 단지 그게 사내를 낳지못한것이 흠이었단 말입니다. 만약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내가 이렇게 처량하지는 않을텐데 말입니다. 아마 내가 벌을 받은 모양이지요』본처가 그리운 모양이다.
<유창하(柳昌夏)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9월 19일호 제4권 37호 통권 제 154호]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