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의 굴곡 누군가에 도움 청했다면…
공백 아닌 공백기를 겪어야 했던 그의 상황은 이번 영화 ‘걸스카우트’ 속 미경의 상황과 묘하게 겹친다. 손에 대는 재테크마다 말아 먹고 곗돈을 쫓다 딸까지 납치당하는 미경.‘절박’과 ‘절실’을 무심한 표정으로 감춘 그는 맨얼굴로 악다구니를 쓰며 사력을 다한다. 그는 최근의 굴곡에 대해 “미경처럼 무데뽀로 혼자 해결하려 하기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고 했다.
김선아는 ‘몸을 아끼지 않는 여배우’‘잘 망가지는 여배우’라는 수식을 제 옷처럼 걸쳐 왔다. 그러나 ‘걸스카우트’에서의 액션은 보는 사람이 단내가 날 정도다. 여기서 그는 그간 로맨스 영화의 전형을 비껴나 딸 뺏긴 어미,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 내야 하는’ 30대 여자의 얼굴을 보여 준다.
미경은 사기꾼 홍기(박원상)에게 흠씬 두드려 맞고도 ‘(여자라고)무시하지 말라.’고 내지른다.“‘무시하지 말라.’는 말은 사회를 향해 쏟아낼 수 있는 짧지만 강한 말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뜯긴 돈은 푼돈이어서 경찰에도 외면당하죠. 큰 건들만 인정하고 돌아가는 사회에 대한 울부짖음 같아서 그 장면 찍을 때는 정말 화도 많이 나고 제 속에서도 절실하게, 아프게 나왔어요.”
●악다구니 연기 망가지는게 아닌 리얼리티
그는 ‘망가진다.’는 말에도 반기를 들었다. 영화 ‘예스터데이’ 때는 의상이 단 두벌이었고 ‘몽정기’에서는 배경이 80년대라 촌스러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그걸로 사람들은 망가진다고 하는데 저는 그게 리얼리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망가지는 연기를 잘한다.’는 말에 공감을 못하겠어요. 화장 못하거나 마스카라 번지는 건 망가지는 게 아니라 현실적인 거죠.”
사람들은 김선아에게 왜 비슷한 캐릭터만 이어가고 있냐고도 한다. 몇년간 그를 따라다니는 질문이다.“깨보고 싶다는 욕심, 벗어나야겠다는 욕심은 분명 있어요. 물론 제가 아니면 안 될 역할도 있을 것이고,‘자뻑’을 하자면 저였기 때문에 더 처절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저만이 느낄 수 있는 장르 안에서의 캐릭터 변화라고 얘기해요. 작품은 연이 닿아야 되더라고요. 연이 닿으면 다음 작품에서는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를 할 수도 있겠죠.”
‘섹스 앤 더 시티’‘쿵푸 팬더’등 할리우드 대작들과 맞붙는 그에게 흥행 예상을 떠봤다. 장난기 어린 표정에 투덜거리는 듯 오물거리는 입술. 딱 김선아답게 그가 답했다.“저희 여자 네 명이서 이꼴저꼴 다 겪었는데 곰 한마디 못 물리치겠어요?”(웃음)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2008-06-07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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