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하튼 예뻐
수정 2008-05-30 00:00
입력 2008-05-30 00:00
그러나 지금 이 벚꽃 피는 열렬한 계절에 어린 봄 나무들 밑을 지나가다 보면 나는 곧잘 아버지를 떠올리곤 한다. 수줍음 많고 내성적이었던 아버지는 이상하게도 친구들을 집으로 끌고 오는 것이 취미여서 늦은 밤 일단의 취객들과 집으로 쳐들어오곤 했는데 그날도 그랬다. 그러곤 비슷하게 취한 친구들 앞에 자신의 어린 딸을 번쩍 안아들고 소개를 했다 “내 딸이지. 예쁘지?” 그러나 취객들에게도 최소한의 판단력은 남아 있었는지 아무도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내 인생 최초로 아버지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아버지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듯 내 얼굴을 슬프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딱 한마디만 했다. “여하튼 예뻐.”
그때 내 나이 세 살이었다. 세 살 나이에 여하튼이란 말이 주는 힘을 알게 되었다. ‘남들이야 뭐라 하든 흥!’ 정도로 풀어보면 좋을 듯하다. 난 세상에 대한 그 자세가 그날 이후로 좋았고 여하튼이란 말도 그날 이후로 좋아했고 그리고 이 일이 내 인생 최초의 기억이란 게 좋았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언제나 어린 봄 나무이다. 무한한 가능성의.
정혜윤 _ CBS의 시사다큐 전문 프로듀서입니다. 독서광으로 소문난 그는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 <침대와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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