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정신 나간 은행들
수정 2007-12-20 00:00
입력 2007-12-20 00:00
은행은 원래 예금을 받아 기업 등에 대출하는 기관이다. 금고에 돈을 가득 쌓아두고 찾아오는 손님을 느긋하게 맞이하는 것이 은행의 정상적인 모습일 것이다. 항상 돈이 급한 쪽은 기업이었다. 기업들은 돈을 얻어 쓰기 위해 은행문전을 부리나케 드나들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반대로 바뀌었다. 기업에는 돈이 남아돌고, 은행은 돈이 없어 쩔쩔 매는 실정이다. 자금난에 몰린 은행들은 시장에서 돈 빌리느라 바쁘다. 올 들어서만 60조원 이상을 빌렸다. 은행들의 이런 이상행동이 탈 많은 금융시장에 또 무슨 변고를 예고하는 것은 아닐지 불안 불안하다.
경찰관이 범인을 검거하는 것은 일상적으로 있는 일이다. 그러나 만약 범인이 경찰관을 검거했다면 매우 해괴한 일로 여겨질 것이다. 자기 역할에 대한 사회의 규범이나 기대에 배치되는 이상행동이기 때문이다. 우리 은행들이 지금 이와 유사한 이상행동을 하고 있다. 그 증세가 중증이다.
스스로 위기를 자초한 측면이 크다. 은행의 자금난은 축소경영이 필요한 시기에 확대경영을 한 것이 화근이다. 주식붐을 타고 은행에서 예금이 빠져나가 펀드로 옮겨가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이를 무시했다. 몸집 불리기에만 혈안이 되어 위험신호를 보고도 ‘묻지마 대출’을 지속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들을 야기했다. 부동산 버블기에 주택담보대출을 크게 늘린 결과 집값이 더욱 폭등했다. 부동산 버블이 끝난 다음에는 중소기업대출을 마구 늘렸다. 예금이 바닥나자 자금시장에서 단기로 돈을 빌려 대출했다. 그 바람에 금리가 폭등하고 있다.
왜 이처럼 불건전하고, 비이성적이며, 반사회적인 확대경영을 무리하게 끌고 왔을까. 예금이 줄면 대출도 줄이는 것이 정상이다. 꿩을 놓쳤으면 꿩고기를 먹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은행들은 꿩에다 알까지 챙겨먹으려 했다. 모자라는 돈은 시장에서 빌리면 되고, 그로 인해 불어나는 이자부담은 대출금리 인상으로 고객에게 떠넘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꿩 먹고 알 먹고’ 식의 행태다. 은행이 대마불사 시대의 재벌기업들처럼 빚내서 장사할 생각을 했다니 참으로 놀랍다. 외환위기때 말 못할 고통을 겪고도 아직 부족한 것인가.
은행들은 무리한 확대경영을 당장 접어야 한다. 이제 집값이 떨어지고 금리가 계속 오르면 부동산 버블기에 막차 탄 주택구입자들의 대출이 부실화할 위험이 크다. 한국판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오지 말란 법이 없다. 그 뒷감당을 누가 할 것인가. 내년이 걱정이다.
논설실장 yeomjs@seoul.co.kr
2007-12-20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