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기 가족클리닉-행복만들기] 손자 돌보다 딸과 싸움만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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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7-11-21 00:00
입력 2007-11-21 00:00
Q저는 50대 초반의 주부입니다. 원래 직장을 다녔는데 경제적인 부분을 딸이 지원해 주기로 하고 이제는 집에서 손자들만 돌봅니다. 네 살, 두 살 아이 둘을 키운 지 이제 반년쯤 됐는데요. 손자들이 사랑스럽지만 벌써부터 늙은 할머니가 된 것 같아 종종 우울한 기분이 듭니다. 근데 언젠가부터 딸과도 다툼이 많아졌습니다. 옛날부터 부부 싸움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서인지 조금만 소릴 질러도 딸은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엄마가 소리를 지르니 아이가 보고 배운 게 아니냐면서 그런 환경에서 키우고 싶지 않다고 울더군요. 어릴 때 엄마 아빠 악 쓰며 싸우던 모습이 지금도 자기는 생생하다면서요. 딸이 엄마 사정 몰라 주니 손자 키우는 것도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고 갑갑하기만 합니다. -이창숙(가명)



A아이 돌보는 것도 힘든데 딸과 갈등상황까지 연결되니 서운하고 답답한 마음 이해가 됩니다. 과거 힘들었던 시절을 딸이 이해하기보다는 비난하면서 들춰낼 때면 ‘내가 무슨 좋은 소리 듣겠다고 내 일과 생활을 모두 반납하고 이러고 있나.’하는 억울한 생각까지 들겠지요. 그러나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지금의 상황에서 생각하지 말고 딸 내면의 상처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모녀지간의 갈등 고리를 풀 수 있기 때문이지요. 부모님의 잦은 부부싸움으로 인해 성장과정에서 딸이 받았을 상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계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목소리가 크고 소리를 지르게 될 때 당사자인 어머니 입장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감정표출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딸의 입장에서는 과거 상처의 기억으로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과거 부모가 악쓰며 싸우던 모습이 되살아난다는 것은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오늘의 문제를 의미하기도 하고요. 과거 기억으로 억압시켰다가 자녀양육과정에서 계속 되살아날 것이 예상되기도 하지요.

사람은 누구라도 과거 성장과정에서 받았던 상처가 있기 마련입니다. 원래 부족한 게 인간이듯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 없고 부모역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기 때문입니다. 딸이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엄마의 삶에 대해 비난하거나 잘못을 공격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단지 자신의 응어리진 상처에 대해 얘기하려 하는 것뿐이지요. 부정하거나 방어적인 경계심을 풀고,“지금 생각해 보니 어린 시절 네가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엄마, 아빠 싸울 때 어린 네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니?”마주앉아 딸의 과거 감정에 귀 기울여 주고 더 많은 이야기 듣도록 하세요. 이 때, 눈물과 함께 쏟아내는 토설을 통해 응어리진 마음이 많이 풀어질 것이니 앞질러 과거 아픔을 덮으려 하지 마세요. 마음을 함께 나누는 과정을 거치면서 모녀 사이는 더 돈독해질 것입니다.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일에 대한 가치, 즐거움이 있고 적성에 맞는 것들을 체크해 보세요. 손자 돌보는 일보다 다른 일을 찾았을 때 삶의 만족감을 높일 수 있다면 가족회의를 통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 봐야 합니다. 무리한 육아에 대한 책임과 스트레스는 손자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손자를 돌본다 해도 놀이방이나 어린이 집을 부분적으로 이용하거나 다른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지요. 지금 느끼고 있는 우울한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녀중심의 생활패턴을 중단하고 자기중심의 생활을 병행해야 합니다. 화를 안으로 삭이면 우울증, 밖으로 표출하면 감정폭발로 이어지지요. 자기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고 건강한 사람입니다. 누구나 자신을 행복하게 할 권리와 책임이 따릅니다. 엄마는 딸의 역할모델 학습이니 자신을 먼저 행복하게 만드는 것에 주력하기 바랍니다.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장>
2007-11-2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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