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 in] 80년대생이 느끼는 고통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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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7-10-13 00:00
입력 2007-10-13 00:00
이번 부산국제영화제는 여러 모로 주목할 점이 많다. 그 중 하나는 바로 ‘한국영화의 오늘’ 섹션에 상영된 젊은 영화들이다. 주목을 받은 것은 생물학적으로 젊은 혹은 어린 감독들의 작품들이다. 이를테면, 이승영 감독의 ‘여기보다 어딘가에’ 그리고 양해훈 감독의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와 같은 작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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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보다 어딘가에’(사진 위)‘저수지에서 건진 치타’(아래)
‘여기보다 어딘가에’(사진 위)‘저수지에서 건진 치타’(아래)
이 두 영화의 감독은 모두 20대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두 영화가 모두 21세기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청춘”을 관통하고 있는지 잘 보여 준다는 사실이다.

우선 이승영 감독의 ‘여기보다 어딘가에’는 26살의 “찌질이”들을 그려낸다. 대학을 졸업한 수연 그리고 군대를 갔다온 후 복학한 동현은 모두 현실부적응자들이다. 어떤 점에서 이 두 녀석들에게는 “낙오자” 혹은 “루저”라는 말조차도 사치스럽다. 그들은 늘 현실에 대해 멍한 눈초리로 응대하고 약간 입을 벌린 채 무방비상태로 마주친다. 꿈 때문에 힘들다고 토로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들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 너무 많은 가능성을 꿈으로 오해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뮤지션이 되고자 무조건 유학을 떠나고 싶어하는 수연은 이런 면을 잘 보여 준다. 실상 수연의 유학은 도피에 불과하다. 눈 앞에 닥친 현실을 피하고 싶어 내세우는 변명은 바로 “꿈”이다. 유학을 다녀와 뮤지션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다섯 살 혹은 여섯 살 아이가 말하는 장래 희망과 다를 바 없다.

‘여기보다 어딘가에’의 장점이라면 이 무계획, 무대책의 젊은이들의 삶을 냉정하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이승영은 이 찌질이들에게 면죄부를 준다거나 무조건 잘 될 거라는 식의 결론을 주지 않는다. 어떤 점에서 이 찌질이들은 역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크나큰 곤란에 처해본 적이 없는,80년대생의 낙오를 가장 잘 드러낸 표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양해훈 감독의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 역시 80년대생의 삶을 압축하고 있다. 주인공 재희는 고등학교 시절 “치타”라고 불리며 왕따를 당한다. 그는 이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하고 방안에 갇혀 지내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로 지낸다. 덥수룩하게 머리를 기른 채 마술을 연습하고 인터넷 통신으로 세상과 접촉하는 치타. 그에게 세계는 방안에서 접할 수 있는 것으로 축소된다.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는 결국 그 상처의 원흉을 만나 극복해 가는 과정을 제시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왕따”라는 문제가 드디어 트라우마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치타가 상처를 극복해 가는 과정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는 한 이십대 청년의 모습이다.



‘여기보다 어딘가에’나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는 80년대생이 느끼는 고통이 어떤 질감인지를 직감하게 하는 작품들이다. 그들,20대 젊은이들은 시대, 경제, 정치와 같은 거대담론과 상처를 결부짓지 않는다. 세계의 왜소화라고 비난할 기성 세대들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방’과 고통스럽게 싸우고 있다. 다만 ‘적’이 달라졌을 뿐, 싸움은 여전히 치열하다.

영화평론가
2007-10-13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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