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공약 검증] 정치·행정개혁 상대적 무관심… ‘공약 기근’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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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7-10-11 00:00
입력 2007-10-11 00:00
2007년 대통령선거 후보들이 약속하고 있는 정치 관련 정책을 보면 한국에서 더 이상 고민할 정치·행정 관련 문제는 없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후보들의 공약에서 정치나 행정과 관련된 것은 거의 없는 탓이다. 정치 관련 공약이 빈약하기 짝이 없는 현상은 역대 대선과는 딴판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의 ‘돈은 묶고 말은 푼다’는 통합선거법, 김대중 정부의 국회개혁법, 그리고 노무현 정부의 2004년 정치관계법의 개정은 모두 공약이 많이 반영된 것이다. 공약 빈곤은 정치권이 어느정도 깨끗해졌다는 얘기일 수 있다. 그렇더라도 대선 후보들은 정치 개혁에 대한 안일한 자세를 버리고 정책들을 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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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집필  김민전 경희대 교수
대표집필
김민전 경희대 교수


정치·행정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정치 관련 공약은 ‘법질서를 확립하겠다.’는 것과 ‘이념·지역·계층 간의 갈등을 해소하겠다.’는 두 가지다. 정치분야의 독립적인 공약이 아니라 7·4·7공약의 일환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정치는 경제를 뒷바라지하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공약보다도 이 후보의 정치관을 더 잘 보여주는 것은 후보 확정 이후 보여주는 ‘탈여의도 정치’ 행보다. 집권할 경우 의원이 아닌 외부전문가 중심의 내각구성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 국회 호소보다는 대중을 상대로 하는 직접적인 설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 운영과 관련해서는 ‘작지만 똑똑한 정부’를, 지방자치와 관련해서는 수도권의 규제를 완화하고 지방에 대해서는 과학비즈니스 도시를 조성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이 후보의 공약은 경제우선주의가 잘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점은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와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특별회계 및 각종 기금의 합리화를 통해 40조∼50조원의 경제사회적 효과가 발생하도록 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계산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신의 직장’이라고 하는 공공부문의 비효율이 누적되어온 것이 사실이지만, 지나친 공공부문의 개혁이 공공재의 공급부족을 초래하거나 공공요금 인상 같은 부작용도 우려된다.

대통합민주신당 세 후보의 정치 관련 공약의 차별성을 찾기는 쉽지 않다. 민주개혁세력을 자처하고 있지만 정당이 제도화되지 못하고,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는 현실과 부정선거 논란으로 경선이 얼룩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공약 미비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손학규 후보의 ‘새 정치를 위한 약속’은 원론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손 후보는 “새 정치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선 인간중심의 정치를 일컫는다.”면서 “민주화는 제도에 치중했지만, 새 정치는 인간을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무엇이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 그것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전략을 찾을 수 없다.

정동영 후보의 ‘천·지·인 공약’에는 정치나 행정에 할애된 부분이 전혀 없다. 다만 몇몇 강연에서 ‘중통령의 시대를 열어나가겠다.’고 표명한 게 전부다. 집권적 권위주의 체제를 상징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의 말을 잘 듣고, 가려운 데를 긁어주며, 막힌 곳을 잘 찾아내어 뚫어주는 겸손한 중통령이 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만 바뀐다고 우리 대통령제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중통령의 시대를 열기 위해 어떤 제도적인 처방을 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구상은 제시하지 못한다.



이해찬 후보는 권력구조의 변경, 지역주의 정치타파, 언론·사법부 공정성 보장, 정경유착 근절, 자유와 책임 조화 등을 주장하고 있으며, 행정과 관련해서는 예산구조의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지방자치와 관련해서는 참여정부의 분권 로드맵을 계승해 강력한 공공기관 이전 정책을 펼치겠다고 말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참여정부의 노선을 계승하고 있지만, 거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권영길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한 이후 빠른 속도로 공약을 보완해가고 있다. 정치와 관련해서는 국민발안제, 국민소환제의 도입과 국민투표권의 확대,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제의 도입, 독일식 정당명부제의 확대를 제안하고 있다. 국민발안제, 국민소환제, 국민투표권의 확대가 모두 직접민주주의적인 요소를 강화하고자 하는 방향의 공약이라면, 정당명부제의 확대와 결선투표제의 도입은 소수자의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07-10-11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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