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757)-제6부 理氣互發說 제4장 儒林 (14)
수정 2006-12-18 00:00
입력 2006-12-18 00:00
제4장 儒林 (14)
지팡이를 짚고 마당을 거닐고 있다가 자공을 보자 ‘어째서 이토록 늦게 왔느냐.’고 하소연하는 공자의 모습은 참으로 인간적이다. 사랑하는 아들과 두 제자를 먼저 떠나보내고 깊은 병에 들어있는 독거노인으로서의 공자의 고독을 처연하게 드러내고 있는 장면인 것이다.
이때 공자는 눈물을 흘리면서 다음과 같이 노래를 불렀다고 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태산이 무너지는도다.
철주는 부러지는도다.
철인이 시들려는도다.
(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
사기에는 공자가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유언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천하에는 오랫동안 도(道)가 없고 그렇다고 해서 나를 종주(宗主)로 떠받들지도 않는다. 그런데 하(夏)에서는 유해를 입관하면 동쪽 계단 위에 두고, 주(周)에서는 서쪽 계단 위에 두고, 은(殷)에서는 당상(堂上)의 동서 두 기둥 사이에 두는데, 어젯밤 꿈에 보니 내가 동서 두 기둥 사이에 놓여 있고, 공물(供物)이 그 앞에 갖추어져 있었다. 나의 조상은 은나라 사람이다.”
자신의 조상이 은나라 사람이므로 은나라의 장례법대로 동서 두 기둥 사이에 유해가 안치될 것이라는 공자의 유언은 자신이 곧 죽을 것이며, 마침내 동서 두 기둥 사이에 묻힐 것임을 예언하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사기는 간략하게 공자의 죽음을 전하고 있다.
“···그로부터 이레 뒤에 공자는 죽었다. 나이는 72세로 노의 애공 16년 4월 기축일(己丑日)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짤막한 사기의 기록과는 달리 예기 ‘단궁(檀弓)’ 상편에는 죽음을 맞은 공자의 모습을 보다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공자의 마지막 노래를 들은 후 자공은 슬픔에 젖어 종종걸음으로 공자의 방으로 들어가며 말한다.
“태산이 무너지면 우리들은 앞으로 무엇을 우러를 것이며, 철주가 부러지고, 철인이 시들어버린다면 우리는 한편으로 무엇을 의지해야하는 것입니까. 선생님께서는 아마도 병이 깊어 마음이 약해지신 모양입니다.”
이 말을 들은 공자는 말하였다.
“사야, 오는 것이 어찌 그리 더디냐. 옛날 하나라 사람들은 동쪽 섬돌 위에 빈소를 차렸는데, 이는 마치 죽은 이가 손님을 대하는 주인노릇을 하려는 것이었다. 은나라 사람들은 양편 기둥에 빈소를 마련했으니 손님과 주인사이에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주나라 사람들은 서쪽 섬돌 위에 빈소를 만들었으니, 이는 마치 죽은 이가 손님으로 있듯이 하려는 것이었다.”
2006-12-1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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